불법 사금융과 싸워온 전문가들은 "당장 돈을 구할 수 없는 취약계층이 악마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단속보다 서민자금 공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지면서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린 취약층이 급증하고 있어 이를 현실화하는 게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9일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에 서울 여의도 금감원을 직접 찾아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불법 사금융을 끝까지 처단하고 이들의 불법 이익을 남김없이 박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지난 9월 혼자 딸을 키우며 살던 30대 여성이 불법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부가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우선 금융당국은 대부업자 진입·퇴출 요건 강화와 불법 대부업에 대한 제재·처벌 수준 상향을 골자로 한 대부업법 개정안 통과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문제는 대부업법 개정안이 취약계층 자금공급을 오히려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업법 개정안은 우량하고 건전한 대부업자 위주로 시장 질서를 개편하고, 법 테두리 밖의 불법 사금융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뿌리 뽑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부업 진출 요건을 높임으로써 서민들의 급전 창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불법 사금융을 줄이기 위해서는 민간에서 취약계층 자금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저소득·저신용 취약계층이 주로 찾는 대부업체들이 대출공급을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와 정치권이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계속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면서 오히려 서민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이 NICE평가정보 자료를 바탕으로 집계 가능한 대부업체들의 신용대출 잔액을 분석한 결과, 대부업체 신용대출은 2022년 9월 10조3453억원에서 올해 9월 8조594억원으로 22%가량 줄었다. 대출공급이 줄면서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6~10등급)는 지난해 최대 9만1000명으로 추산된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2021년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24%에서 20%로 내리고, 이에 수익성이 악화된 대부업체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난 취약계층이 급증했다"면서 "법정 최고금리는 법 개정 없이 대통령령으로 27.9%까지 상향이 가능한데 시장금리 인상으로 대부업체들의 조달비용이 급증한 만큼, 이를 현실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은행권이 우수 대부업체에 대해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우수 대부업자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금리 인상기 은행권이 막대한 이익을 거둔 만큼, 서민금융 공급 확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