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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금융 리더십] 김성태號 기업은행…'비올 때 우산 뺏지 않아' 철학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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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금융 리더십] 김성태號 기업은행…'비올 때 우산 뺏지 않아' 철학 통했다

대형은행 中企대출 외면에도 기업은행만 확대 '신뢰도 상승'
30년 기업은행맨 김성태 행장 '중기 지킴이' 역할 충실
"경제 방파제 역할하다 수익성·건전성 흔들린다" 우려도
김성태 IBK기업은행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2025년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기업은행이미지 확대보기
김성태 IBK기업은행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2025년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기업은행
'비 올때 우산을 빼앗지 않는 은행'을 표방하는 기업은행이 경기침체와 미국발 관세전쟁 불확실성 확대 등 위기에도 중기대출 공급을 늘려 시장 점유율을 2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라 전체 대출의 70% 이상을 중기대출로 취급해야 하지만 이미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대출에서 중기대출의 비중이 80%가 넘었다. 시중은행들이 건전성 악화 우려로 중기 대출을 기피하는 가운데 기업은행은 중기대출을 급격히 확대한 것은 중기 지킴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1989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30년 넘게 기업은행맨으로 근무하면서 '비 올때 우산을 빼앗지 않는 은행'이라는 기업은행의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내부출신 김성태 은행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기업은행 중기대출 시장 점유율 25% 수준까지 확대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기업은행의 중기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247조1921억 원) 대비 2.14%(5조3015억 원) 증가한 252조4936억 원으로 집계됐다.

기업은행의 중기대출 잔액은 2012년 3월 100조 원, 2018년 9월 150조 원, 2021년 8월 200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2월 250조 원 달성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기업은행이 전체 은행권에서 담당하는 중기대출 비중도 점차 커지고 있다. 100조 원을 달성한 2021년 3월 당시 기업은행의 중기대출 시장점유율은 21.73%였지만, 2021년 말 22.84%, 2022년 말 22.94%, 2023년 말 23.24%, 2024년 말 23.65%, 올해 3월 말 24.18%까지 올랐다. 사실상 국내 중기대출 수요의 4분의 1을 기업은행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기업은행의 중기대출 점유율이 급등한 것은 기업은행이 악화된 경기 상황을 고려해 중기대출 공급을 늘리고 있는 반면, 시중은행은 건전성 악화 우려로 대출을 내어주기 꺼려하고 있어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중기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542조91억 원에서 올해 3월 말 540조7312억 원으로 감소했다. 4대 은행의 중기대출 잔액은 지난해 12.3 계엄사태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12월 중 5조 원 이상 급감한 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환율 급등으로 자본비율 관리에 비상이 걸린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확대하기보다 건전성 관리에 무게를 뒀다. 환율이 오르면 외화부채같은 외화표시자산의 원화환산금액이 증가하기 때문에 위험가중자산(RWA) 규모가 커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RWA를 집계할 때 적용하는 위험 가중치가 높아 BIS 비율을 낮출 우려가 있다. 기업이 영세하거나 경영이 어려울 수록 위험가중치는 높아진다.

본연의 역할 좋지만 이러다 탈날라 우려


기업은행의 중기대출 시장점유율이 25% 수준까지 확대된 데는 건전성 악화 우려에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 확대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김성태 기업은행장의 의지의 결과물이란 평가다.

1989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기업은행 전무이사(수석부행장), IBK캐피탈 대표이사, 기업은행 경영전략그룹장, 소비자보호그룹장, 경동지역본부장, 마케팅전략부장, 종합기획부장, 미래기획실장, 비서실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친 뒤 2023년 1월 은행장 자리에 오른 그는 누구보다 중소기업 전문 정책금융기관이라는 기업은행의 본연의 역할을 강조한 행장으로 꼽힌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에 가로 막혀 기업금융 시장에 눈독을 들일 때도 경쟁에 성공하면서 점유율 1위를 안정적으로 지켜냈고, 최근 고환율로 시중은행들이 중기대출 시장을 외면할 때에도 공격적으로 중기대출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라 전체 대출의 70% 이상을 중기대출로 취급해야 하지만 이미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대출에서 중기대출이 82.2%가 넘은 상황에서 중기대출 공급을 늘린 것은 경영진이 리스크를 감수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 올 때 우산 씌워주는' 기업은행의 상생 금융이 수익성과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김 행장의 고민도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미 건전성과 수익성은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조6543억 원으로 전년(2조6752억 원)보다 소폭 줄었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지난해 금리 인상기를 통한 예대금리차 확대로 순이익이 급증하는 호황을 누렸지만, 기업은행은 순이익이 감소한 것이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지만 동시에 상장사이기도 하다. 정부가 지분 약 60%를 보유하고 있지만, 나머지 40% 가량은 일반 주주라는 점에서 수익성 악화에 따른 배당 축소는 부담이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는 것도 건전성을 흔들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업은행의 중소기업대출 부문 연체율은 0.83%로, 전년 말(0.64%) 대비 0.19%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10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기대출 부문에서 발생한 고정이하여신 잔액도 3조9117억 원으로 1년 새 33% 뛰었다.

김 행장은 이 같은 우려에도 중기대출 공급 확대 기조를 유지하면서 건전성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기업은행은 경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환리스크 취약 분야, 업종별 건전성 취약 부분을 발굴하고 이들 기업에 대한 특별점검을 통해 맞춤형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경영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들을 선제 발굴하고 유동성 위기에 처하기 전에 선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중소기업의 경제적 위기 극복을 위해 전년 대비 더욱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자금 지원이 필요한 분야를 추가 발굴해 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등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역할 수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