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미국의 산업 정책에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됐다. 특히 첨단 산업의 핵심이자 세계화의 부산물인 반도체 산업의 미국 집중을 목표로 하는 반도체 지원 및 과학법(칩스법)의 반향은 엄청났다. 세계화 이후 현재 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제조를 미국에 복원하기 위해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미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을 복원하기 위한 정부 지원을 마련한 것으로, 반도체 제조에 미국 국내 투자를 지원하고, 25%의 투자 세액 공제 외 약 390억 달러의 제조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이런 인센티브는 이미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와 공급업체가 미국에 투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2022년 아시아 반도체 수출입 동향을 살펴보면, 칩스법이 아시아로부터의 수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칩스법 시행이 본격 궤도에 오르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이 확대되고, 미국에서 생산을 늘리면 당연히 아시아 공급업체의 미국 시장 진출은 더 어렵게 되고, 미국으로의 수출에도 감소가 나타날 것이 자명하다.
특히 미국 정부는 반도체의 성능과 효율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 기술의 개발과 보급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아시아 공급업체는 첨단 패키징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내 투자를 늘리거나, 미국 기업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에 대만·일본·한국 등 아시아의 주요 반도체 수출업체들은 미국이 주도한 반도체의 보조금 경쟁으로 인한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칩스법에 대응해 자체적으로 보조금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칫 출혈 경쟁과 과잉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고, 가격이 폭락해 자유 진영 내에 공고하게 구축된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아시아 반도체 국가들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미국 산업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미국의 칩스법이 아시아 반도체 산업에 잠재적 위협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글로벌 공급망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이러한 위협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에 나서고 있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공급망 협의회가 이러한 노력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회원국은 중복을 피하고, 회원국 간 개방적인 무역을 유지하며, 중요한 자재 조달을 점진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또한, 중국과의 긴장에 대비해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유럽 등 주요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다양화와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규제 완화를 도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긴장과 반도체 산업의 급속한 변화로 아시아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점차 불확실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향후 미국은 아시아 반도체 생산 국가들의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자국만이 아닌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