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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이 해외에 '디지털 자산' 옮겨놓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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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이 해외에 '디지털 자산' 옮겨놓는 이유

국가안보, 군사력·경제력보다 '데이터와 기술'이 핵심으로 급부상
국가 안보와 번영을 사수하는 데 중요한 필수 요소로 데이터와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은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 센터. 사진=MS이미지 확대보기
국가 안보와 번영을 사수하는 데 중요한 필수 요소로 데이터와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은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 센터. 사진=MS
미국의 패권이 약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분열과 전쟁이 확대되며 평안했던 국가 안보의 틀이 흔들리고 있다. 기후 변화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삼 국가 안보와 번영을 사수하는 데 중요한 필수 요소로 데이터와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니케이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과거에는 국가의 존속을 좌우하는 요소로 군사력, 경제력, 지리적 여건 등이 꼽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영국과 프랑스는 중앙은행 금괴를 캐나다로 옮겨 독일 점령과 전후 재기에 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요소들 못지않게 디지털 데이터와 기술이 국가의 존속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첨단 기술과 핵심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면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할 수 있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경제를 되살릴 수 있으며, 기후 변동에도 대응 기술을 활용해 피해를 줄이고 국가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전쟁의 우려가 있는 대만과 현재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나라는 전쟁 위기로부터 핵심 자산인 디지털 데이터의 '천도'를 통해 국가 안보를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디지털 천도’는 나라의 핵심 데이터를 여러 위치에 분산 저장해 한 지점이 공격받더라도 다른 지점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국가의 안보를 강화하고, 국가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자 주민등록 기록, 고정 자산 대장, 납세 정보, 범죄 정보 등 기초 데이터를 아마존 웹 서비스(AWS)의 도움으로 국외로 이전시켰다.

이후 러시아의 미사일 두 발이 우크라이나의 데이터센터와 통신설비를 폭격하며 해당 기능이 마비됐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국가 운영의 핵심적 기본 자산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뻔한 것이다.

미국 랜드 연구소는 지난 7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침공 초기 대만 해저 케이블, 휴대 기지국, 데이터 센터 등을 파괴해 통신망과 기반 데이터를 차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만 정부는 세금, 건강·의료, 주민등록정보 등 기반 데이터를 여러 우호국의 데이터 센터에 분산 보존하는 디지털 천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이 성공하면 중국이 침공하더라도 대만 정부는 디지털 공간에서 국가 행정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또 대만은 영국, 룩셈부르크의 위성통신 2개사와 계약해 비상시 인터넷 접속 수단을 확보하는 한편, 우호국에 대만용 통신거점 3곳을 설치할 예정이다.

에스토니아는 미국 IT 기업의 힘을 빌려 룩셈부르크에 정부 데이터를 백업하는 데이터센터를 설치했다. 2017년 양국은 데이터센터를 대사관처럼 취급하는 ‘불가침’ 각서를 맺었다. 2021년에는 모나코도 룩셈부르크에 ‘데이터 대사관’을 설치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자유 진영의 대표인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기술적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판 스타링크'를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이후,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를 활용해 인터넷과 디지털 정보를 교환하는 것에 주목한 EU는 안보 강화와 경제 발전, 기술 주도권 확보를 목적으로 지난 3월 유럽판 스타링크 사업인 '유럽 통신 위성 계획(European Communications Satellites Initiative)'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오는 2025년까지 630개의 저궤도 통신 위성을 발사하고, 2030년까지 유럽 전역에 광대역 위성 인터넷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또 구축된 저궤도 통신 위성망을 통해 국가 기반 데이터를 여러 우호국에 분산 저장함으로써, 한 국가가 외부의 공격을 받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점에서 인터넷 연결과 국가 기반 데이터 접속을 가능케 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디지털 천도'는 현재 개별 국가나 권역 단위에서만 이뤄지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국가 간 협력이나 국제적 규범이 마련된 것은 아니어서 향후 별다른 논의가 필요할 전망이다.

한국도 '국가 디지털 자산 백업·복구 체계 개선 계획'을 발표하고 국가 필수 데이터 자산의 분산 보관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2024년까지 국가 필수 데이터 자산의 70%를 국내외 2개 이상 데이터 센터에 분산 보관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국내외 20여 곳의 데이터 센터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 보관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표준화된 보안 기술을 적용하고, 복구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