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발 경제 충격의 실상
중국은 내수 부진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특히 미국, 유럽과의 무역 갈등으로 인해 서방 시장으로의 수출이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동남아시아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분석에 따르면, 작년 중국 수출의 약 3분의 1이 동남아시아와 기타 신흥 아시아 시장으로 향했다. 이는 이 지역의 세계 GDP 비중(약 10%)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중국의 이러한 수출 공세는 동남아 국가들과의 무역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태국은 중국과 무역 적자가 2020년 200억 달러에서 2023년 366억 달러로 급증했다. 말레이시아도 같은 기간 31억 달러에서 142억 달러로 폭증했다. 인도네시아는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지만, 2024년 상반기 50억 달러의 비석유 및 가스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실제, 중국의 저가 제품 유입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태국에서는 작년에 1300개 이상의 공장이 문을 닫았는데, 이는 전년 대비 60% 증가한 수치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추가로 500개의 공장이 폐쇄되어 1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인도네시아의 섬유, 의류, 신발 산업도 큰 타격을 입어 올해에만 약 4만9000명의 근로자가 해고되었다. 철강 산업의 경우, 태국 국내 생산량이 작년에 7% 감소했으며, 주요 철강 기업들의 적자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중국 제품 유입은 전통적 수입 경로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쇼피, 라자다, 틱톡샵 등의 플랫폼은 중국 수출업체들이 동남아 소비자들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되면서, 현지 소매업체들에 추가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 동남아 국가들의 대응
이런 상황에 대응하여 동남아 국가들은 다양한 보호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입 직물에 최대 20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중국산 섬유 제품에 대한 수입 검사를 강화했고, 일부 품목에 대해서 수입 허가제를 도입했다. 또한, 전자상거래를 통한 중국 제품 유입을 제한하기 위해 최소 거래 가격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약 15만 원(500링깃) 미만 온라인 구매 수입품에 10% 판매세를 부과했다.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최대 16.13%의 세이프가드 관세를 부과하고, 자국 팜유 산업 보호를 위해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팜유 수출 쿼터를 확대했다. 태국도 약 5만8000원(1500바트) 미만의 수입 구매에 7%의 부가가치세를 확대 적용했다.
베트남도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강화했다. 특히, 철강 제품에 최대 38.34%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섬유 및 의류 제품에 대한 원산지 규정을 강화했다.
필리핀은 중국산 세라믹 타일에 최대 10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으며, 농업 분야에서는 중국산 양파와 마늘 수입에 대한 제한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관세와 세금 부과는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지만, 동시에 소비자 부담을 늘리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할 수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 제품 유입을 제한하면서도 중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특히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태국은 중국 전기차 업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관세 면제와 보조금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기존 자동차 부품 산업이 타격을 입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직접적 무역 제한 대신 자국 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 주도로 중소기업 디지털화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현지 기업들의 기술 혁신을 돕고 있다.
◇ 지역 경제 통합의 영향
이와 같은 중국과 동남아의 경제 교류 확대는 중국-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역내 무역 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한 규약을 통해 이뤄졌지만, 동시에 중국 제품의 유입을 더 쉽게 만들었다. 이는 동남아 중소기업들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이제,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자국 산업 보호와 중국 투자 유치, 소비자 이익과 제조업 기반 유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국면에 직면했다.
장기적으로는 산업 구조조정과 기술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더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수출 시장 다변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결국, 중국 경제 위기가 동남아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으로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지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는 각국 정부의 현명한 정책 대응과 기업들의 적극적 혁신 노력이 가동될 때 이뤄질 수 있다. 동남아는 글로벌 질서의 재편 과정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면 GDP 성장률이 다른 대륙을 앞설 것이고, 극복하지 못하면 후퇴하게 될 것이다. 동남아 국가들이 현실적 도전에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별로 불균등한 성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