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세금 정책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느 나라나 세금 문제는 난제이지만, 국가 채무가 35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에 세금 문제는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최근 로이터와 FT 등 주요 외신은 ‘세금 정책 변화의 해’로 불리는 2025년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세금 정책 대결이 미국 경제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는 단순 세율 조정을 넘어 미국 경제 성장, 재정 건전성, 그리고 사회 복지 시스템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선택이 될 것이다.
현재 미국인의 56%가 연방소득세를 너무 많이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57%는 정부의 재정적자 축소를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여론은 정책 입안자들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세금 인하를 통한 경제 활성화와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에, 트럼프와 해리스의 접근 방식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 트럼프 vs 해리스, 상반된 세금 정책과 그 영향
트럼프의 세금 정책은 2017년 세금감면 및 고용법(TCJA)의 연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TCJA가 만료될 경우 약 62%의 납세자가 세금 부담 증가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이를 방지하고 추가적인 세금 감면을 제안하고 있다. 팁 소득과 사회보장 급여에 대한 세금 면제, 법인세율 추가 인하 등이 그 예다. 특히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서 법인세율을 15%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단기적으로 납세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지만, 연방정부 재정적자를 크게 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의회예산국(CBO)은 TCJA 연장만으로도 10년간 4.5조 달러의 재정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의 감세 정책으로 S&P500 기업 수익이 약 4% 증가할 것으로 본다.
반면, 해리스의 정책은 ‘돌봄 경제’와 사회 복지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40만 달러 이하 소득자에 현행 세율 유지, 자녀 세액공제 확대, 신생아 가정에 대한 6,000달러 세액공제,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한 최대 25,000달러 세액공제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계획하고 있다.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인상하고, 연간 소득 100만 달러 이상 가구에 대해 28%의 장기 자본이득세를 부과하는 등의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골드만삭스는 해리스의 28% 법인세율 정책으로 S&P500 기업의 수익이 5%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새로운 연방정부 지출과 확대된 중산층 세액공제가 이를 상쇄하여, 민주당이 백악관과 의회에서 승리할 경우 향후 2년 동안 광범위한 경제가 가장 큰 힘을 얻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국제 조세 정책과 무역,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
두 후보 정책은 모두 국내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자국 우선주의적’ 경제 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접근이 잘못된 진단에 기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과의 무역으로 인한 일자리 손실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적었으며, 제조업 고용 감소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추세라는 것이다.
대신, 전문가들은 세법 개정을 통해 해외 이전을 줄이고 국내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현재 미국 세법은 외국 기업 활동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어, 이를 ‘미국 마지막’ 세금 정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행 미국 세법은 다국적 기업의 해외 소득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많은 경우,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미국 내 소득의 절반 수준으로 과세하거나 심지어 전혀 과세하지 않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해외에 있는 유형 자산에 대한 세금 혜택이다. 예를 들어, 해외의 0세율 관할권(세금 피난처)에서 얻은 소득의 첫 10% 수익에 대해서는 미국 세금이 전혀 부과되지 않는다. 나머지 수익에 대해서도 미국 소스 소득보다 50% 공제하여 세금을 부과한다. 이에 기업이 해외에 더 많은 유형 자산을 보유할수록 미국에 내는 세금이 줄어드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제 세금 협정 가입을 통한 ‘국가별’ 최저 세금 도입, 해외 소득에 대한 공제 축소 등의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관세 정책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보편적 10~20% 관세와 중국 수입품에 대한 60% 관세를 제안하고 있으며, 해리스 역시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아 중국 수입품에 대한 선별적 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관세가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국제 갈등을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시장과 투자자들의 반응
월가에서는 해리스 승리와 세금 인상 정책 시행 시 기업 수익과 주식시장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자본이득세 인상에 대한 우려가 크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자본이득세와 주식시장 실적 간의 상관관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도, 세금 논쟁 자체가 단기적으로 시장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면, 트럼프의 당선은 인플레이션 촉진과 재정적자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는 재무부 채권 발행을 더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정책이 해리스보다 적자를 더 늘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2024년 대선의 결과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미국의 경제 구조와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선택이 될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단기적인 경제 성장과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 개인의 세금 부담과 사회 안전망 강화 등 복잡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투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동시에 정책 입안자들은 글로벌 경쟁 환경과 급변하는 기술 혁신 시대에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세금 정책을 고안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더 나아가, 국제 조세 협력과 공정한 무역 정책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한 감세나 증세를 넘어, 글로벌 경제 질서 속에 미국 위치를 재정립하고 장기적 경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