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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EU의 경쟁력 위기, 글로벌 질서 재편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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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EU의 경쟁력 위기, 글로벌 질서 재편 신호탄

“혁신 부족과 구조적 난제 직면, 글로벌 경제 지형과 한국 경제 변화 촉매제로”

유럽, 드라기 보고서 전달.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유럽, 드라기 보고서 전달. 사진=로이터

유럽연합(EU)이 심각한 경쟁력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핵심축으로 EU의 역할이 흔들리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경제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상황은 단순 경기 순환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세계 경제가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음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옌 EU 집행위원장에게 제출한 ‘유럽을 위한 신 산업전략’이 알려진 후 뉴욕 타임스와 로이터 등 외신들은 EU의 경쟁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EU 경제 지표들은 실제 우려스러운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유럽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EU의 2023년 2분기 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0.5%에 그쳤다.

이는 2022년 같은 기간의 4.1% 성장률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치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ECB가 발표한 2023년 연간 성장률 전망치가 0.7%로, 이전 전망치 1.0%에서 하향 조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EU 경제 회복력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U 경쟁력 약화는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우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있었다. EU 집행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EU의 GDP는 5.9% 감소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위축이었다. 여기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 압박이 더해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EU의 천연가스 가격은 전년 대비 약 450% 상승했다. 이는 EU 기업들의 생산 비용을 크게 늘려 국제 경쟁력을 약화하였다.

또한, 미중 갈등에 따른 탈세계화 흐름은 EU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더욱 부각하였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무역 성장률은 3.5%로 둔화하였으며, 2023년에는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EU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Eurostat의 2023년 데이터에 따르면, EU의 수출의존도(GDP 대비 상품 및 서비스 수출 비중)는 2022년 기준 약 49.1%였다. 이는 글로벌 평균인 약 30%를 크게 넘는 수치다.

주요 EU 회원국 수준을 보면, 독일이 47.4%, 프랑스가 32.5%, 이탈리아가 35.8%, 네덜란드가 88.5%, 벨기에가 87.1%다. 특히, 주목할 점은 EU 내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들의 수출 의존도가 더 높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룩셈부르크는 209.9%, 아일랜드는 135.9%에 달한다.

이런 높은 수출 의존도는 EU 경제가 글로벌 무역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2022년 이후 글로벌 무역 성장 둔화는 EU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외에도 주목할 점은 EU 혁신 역량 부족이다. 유럽 혁신 스코어보드 2023에 따르면, EU 혁신 성과는 미국의 82%, 한국의 7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 컴퓨팅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EU는 미국과 중국에 크게 뒤처져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AI 특허 출원 건수에서 EU의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미국은 32%, 중국은 37%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EU는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드라기 보고서’ 역시 이런 노력의 결과이다. EU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단일 시장 강화, 혁신 생태계 조성, 그린 및 디지털 전환 가속화 등을 주요 전략으로 제안하고 있다.

드라기는 EU가 뒤지는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연간 7500억~8000억 유로를 투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EU 국내총생산(GDP)의 4.4~4.7%에 맞먹는 규모다. GDP 대비 투자액으로는 1970년대 이후 최대 규모다.

EU 경쟁력 위기는 글로벌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2위의 경제 블록인 EU의 침체는 글로벌 무역과 투자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IMF의 분석에 따르면, EU GDP 1%p 하락은 글로벌 GDP를 0.3%p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유로화의 약세로 이어져 국제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유로화 가치는 달러 대비 약 12% 하락했다.

한국 경제와 기업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EU는 한국의 3대 교역 파트너로, EU의 경기 침체는 한국의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대EU 수출액은 전년 대비 1.3% 감소했다. 특히 자동차, 전자제품 등 주력 수출 품목의 수요 감소가 우려된다.

반면, EU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EU 기술 혁신 지체는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터리,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EU 시장 진출이 확대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2년 EU에서 전기차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했으며, 이는 EU 브랜드들을 제치고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투자자는 이런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EU의 경쟁력 약화는 유럽 기업들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유럽 주식 시장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MSCI 유럽 지수는 2023년 상반기 기준 연초 대비 6.5% 상승에 그쳤다. 반면, 혁신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미국, 한국, 중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특히, 그린 테크, 디지털 헬스케어, 사이버 보안 등 EU가 중점적으로 육성하려는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U의 경쟁력 위기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글로벌 질서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EU가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혁신 주도의 경제로 전환할 수 있을지가 향후 글로벌 경제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