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불법 이민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추방 작전”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국경 안보 강화를 약속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29일(현지시각) 악시오스는 이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유권자들의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고 미국 사회의 분열을 경고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최근 애리조나주 더글러스를 방문해 국경 보안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는 경합 주 유권자에게 이민자 유입을 줄이는 데 진지하다는 확신을 주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방문은 그동안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 재임 동안 전국적으로 1,000만 명 이상의 이민자가 체포되었으며, 지난 회계연도에는 320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시절 총 300만 명에 달했던 것과 비교된다. 이 수치는 현 행정부의 국경 정책이 효과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이 국경 보안을 강화하는 법안을 부결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취임 초기부터 이민자들에 개방적인 신호를 보냈다고 지적한다.
최근 퓨 리서치 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의 88%가 불법 체류자에 대한 대규모 추방에 찬성했지만, 해리스 지지자 가운데 27%만이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국경 보안 강화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높은 지지율(트럼프 지지자 96%, 해리스 지지자 80%)을 보여 공통 관심사임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이 문제가 양당 지지층을 넘어 무당층과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양극단으로 나뉜 현재 정치 구도에서 실제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양극단이 아닌 중도 유권자이며, 이들이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보이느냐가 이번 선거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무당층 유권자의 62%가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한’ 선거 이슈로 꼽았으며, 이는 경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트럼프의 추방 공약은 미국 역사상 두 차례 악명 높은 대규모 추방 사례를 연상시킨다. 1919년 ‘파머 습격’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반이민 정서가 고조된 시기에 일어났다.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A. 미첼 파머는 급진적 정치 견해를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 단속을 벌였다. 수천 명의 이민자가 영장 없이 체포되고 헌법상 권리를 침해당하는 등 시민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또 다른 사례인 1950년대의 ‘웻백 작전’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기에 실시한 대규모 추방 작전이다. ‘웻백’이라는 멕시코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한 이 작전으로 130만 명 이상의 멕시코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강제 추방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시민권자들도 피해를 입었고, 가족이 분리되는 등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종 갈등을 부추기며 가족을 해체하는 등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현대 미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대규모 추방이 실현 가능할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이민 정책은 경제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트럼프는 관세 부과를 통해 식품 가격을 낮추겠다고 공약했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재점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농업과 식품 산업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대규모 추방은 노동력 부족과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식품 산업은 농작물 수확, 육류 가공, 식품 포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주 노동자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 분야 노동자의 약 절반이 이주 노동자이며, 이 중 상당수가 서류 미비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대규모로 추방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곧바로 식품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불어 이주 노동자들을 미국 노동자나 기계로 대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많은 농업 작업이 여전히 숙련된 수작업을 필요로 하며, 이를 자동화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미국 노동자들이 이 일자리를 채우려 하지 않는 경향도 있어, 노동력 공백을 메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농업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요식업, 건설업, 가사 도우미 등 서비스 산업 전반에 걸쳐 이주 노동자들의 기여도가 높다. 따라서, 대규모 추방 정책은 이들 산업의 인력난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서비스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시간 주립대 데이비드 오르테가 교수는 “어떤 미국 대통령도 단기적으로 식량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식료품 가격 상승은 코로나에 따른 공급망 혼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후 변화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한편, 불법 이민 문제는 단순히 국경 안보나 경제 문제에 그치지 않고 미국 정체성과 가치관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민 문제는 미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흐름과 기존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욕구 사이의 긴장이 논쟁의 핵심이다.
라틴계를 비롯한 이민자 커뮤니티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고, 시민권 단체들의 조직력이 강화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저항이 예상된다.
202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히스패닉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의 18.7%를 차지하며, 인구 변화는 정치적 지형을 바꾸고 있다. 특히 텍사스, 애리조나, 조지아 같은 경합 주에서 라틴계 유권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민자 권리를 옹호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더욱 조직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나이티드 위 드림’(United We Dream)과 같은 단체들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캠페인, 대규모 시위 조직, 법적 대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민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
또한, 교회와 지역 공동체 조직들도 이민자들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 지방 정부와 기관들은 아예 연방 이민법 집행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견해도 밝힐 정도이다.
이런 가운데, 해리스 부통령은 국경 보안과 인도적인 이민 시스템을 모두 갖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선거 기간 동안 중도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강경한 이민 정책을 약속하더라도, 실제 당선 후에 진보 진영의 반발을 우려해 정책을 바꾸지 못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번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국가의 미래상을 놓고 선택을 해야 한다. 국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 인도주의적 가치와 다양성 존중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