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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경제 전도사 허리펑, 미국 새 행정부와 세기적 협상에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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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경제 전도사 허리펑, 미국 새 행정부와 세기적 협상에 직면

1조 위안 특별 국채 발행 등 경기부양책 주도
"서방과 대화는 하되 중국식 발전 고수", 시진핑의 결심 대변할 것

시진핑의 남자, 허리핑 역량에 따라 경제 질서 달라진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시진핑의 남자, 허리핑 역량에 따라 경제 질서 달라진다. 사진=로이터
미국 대선을 불과 일주일여 앞둔 가운데, 차기 미 행정부와의 '세기적 경제 협상'을 이끌어갈 중국의 새로운 '키맨' 허리펑(何立峰)의 행보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의 대응 전략을 총괄할 그의 역할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지난 10월 국무원이 발표한 1조 위안(약 180조원) 규모의 국채 추가 발행을 포함해 최근 연이은 경기부양책을 주도한 허리펑은 시진핑 체제하 중국 경제의 가장 강력한 조타수로 떠올랐다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특히 세계은행이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3%로 하향 조정하고, 부동산 시장 침체와 20%를 넘는 청년실업률 등 경제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그는 시진핑의 '강한 중국' 구상을 뒷받침할 새로운 경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 부총리이자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인 허리펑은 증시 안정화를 위한 1000억 위안 규모의 국가투자기금 조성과 함께 제조업 혁신 발전을 위한 정책을 연이어 발표하며 시진핑의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독특한 인사 시스템 속에서 허리펑의 부상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1980년대 샤먼(廈門)시 시절 시진핑과 인연을 맺은 그는 리창(李强) 총리와 함께 중국 경제의 새로운 투톱 체제를 구축했다. 리창 총리가 거시경제 정책을, 허리펑이 산업정책과 대미 경제관계를 주도하는 분업 체제가 확립된 것이다.

허리펑의 주요 성과는 신속한 위기 대응력에서 두드러진다.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그룹 사태 이후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도입한 '두 줄 정책'(양선정책·兩線政策)은 시장의 극단적 불안을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지방정부 재정위기 해소를 위한 특별 국채 발행과 함께, 14.5계획 기간 중 신형 도시화 추진으로 내수 확대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하다. 국유기업 중심의 경제 운영은 민간기업의 활력을 저하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알리바바·텐센트 등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로 중국 IT산업의 혁신 동력이 약화됐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뚜렷한 대책 부재도 과제로 지적된다.

그의 정책 스타일은 시진핑의 의중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평가다. 하버드 출신의 류허(劉鶴) 전 부총리가 시장 자유화를 강조했다면, 허리펑은 국가 주도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강조한다. 시진핑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그의 정책 결정은 신속하고 과감하다. 지난달 발표된 1000억 위안 규모의 증시 안정화 기금 조성이나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허리펑이 추진 중인 새로운 경제정책은 글로벌 공급망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쌍순환' 전략에 따른 핵심기술 국산화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항공우주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공급망 형성을 촉진할 전망이다. 중국의 '신인프라' 투자 확대는 5G, 인공지능, 산업인터넷 분야의 글로벌 표준 경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의 업그레이드다. 허리펑은 최근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실크로드' 구축을 가속하고 있다. 이는 미국 주도의 '칩(Chip) 4' 동맹에 대응한 새로운 기술·산업 생태계 구축 시도로 해석된다.

미·중 간 세기적 경제 협상을 앞두고 그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중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대중 제재로 중국의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13.2% 감소했다. 특히 전기차(82% 감소), 배터리(45% 감소), 태양광(38% 감소) 등 신에너지 분야의 타격이 크다. 이에 허리펑은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응한 맞춤형 보복카드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 국채 매각, 애플과 테슬라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선별적 시장 접근 제한과 희토류 등 필수 자원이나 제품의 수출통제 강화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새로운 협상 전략도 주목된다. 지난주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과의 회동에서 허리펑은 "중국의 저가 고품질 제품 수출이 세계 경제에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오는 7월 중앙정치국 3차 전체회의에서 금융시장 개방 확대와 외국인 투자 제한 완화 등 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성 확대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발표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국에도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중 무역에서 전통적 중간재 수출은 전년 대비 15% 감소한 반면, 첨단 소비재와 장비 수출은 23% 증가했다. 특히 허리펑은 지난달 한국 경제사절단과의 면담에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헬스 분야 협력 강화를 제안했다.

다만, 리스크 관리도 중요하다. 중국의 기술 자립화 가속화로 인한 기술 유출 우려와 함께 미·중 간 세기적 협상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허리펑의 실용주의적 접근은 한·중 경제 관계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결국 허리펑의 성공 여부는 시진핑이 추구하는 '중국몽'과 글로벌 경제 질서의 조화를 얼마나 이룰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의 미국과의 세기적 협상은 향후 세계 경제 질서 재편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