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상품무역 증가율은 0.8%에 그쳤고, 2024년에도 3.3% 성장에 머물 전망이다. 이는 1990~2008년 연평균 6.3% 성장률의 절반 수준이다.
JP모건은 "무역정책이 미국 대선의 세계 경제 충격 핵심 경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對)중국 관세를 최대 60%까지 인상하고, 모든 수입품에 최소 10%의 일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을 위한 수출통제와 투자제한 등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견제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러한 보호무역 강화가 가져올 충격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관세 인상과 무역 긴장 고조로 2026년까지 세계 경제 생산량이 0.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약 45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의미하며, 특히 개발도상국과 신흥국 경제에 더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더욱이 이번 대선은 금융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가베칼 리서치의 찰스 기브는 트럼프가 당선돼 감세와 정부 축소 정책을 시행할 경우, 달러 강세와 장기 금리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의 해외 투자를 위축시키고 유럽 등 주요국의 금리 인상 압박을 가중할 수 있다.
반면 해리스가 승리할 경우 국제 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 투자자들은 이미 해외 시장의 낮은 밸류에이션,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 중국의 경기 부양책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핵심 전선은 기술 패권 경쟁이다. 미국은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0월 고성능 AI칩의 대중 수출을 전면 금지했으며, 네덜란드·일본과 함께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의 대중 수출도 제한하고 있다. 해리스 역시 이러한 기술 패권 경쟁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무역질서의 첫 번째 특징은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 강화다.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도 자동차 등 주요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도 늘고 있다. 인도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280억 달러 규모의 생산연계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북미 지역 제조업체에 대규모 혜택을 주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중국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2017년 이후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부상했으며, 전체 교역품 중간재의 17%를 수출하는 세계 최대 중간재 수출국이다. 베트남, 태국, 인도는 각각 중간재의 25%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의 무역 흑자는 2024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플러스 원(China plus one·중국 외 1개국 생산기지 추가)' 전략이 '중국 플러스 다수(China plus many)' 체제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2019~2023년 미국의 대중국 수입은 5% 감소했지만 인도(45% 증가), 베트남(72% 증가), 멕시코(34% 증가)로부터의 수입은 크게 늘었다.
여기에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리스크도 가세했다. 멕시코와 폴란드의 물 부족, 태국의 홍수, 인도·중국·베트남의 폭염은 제조업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기업들은 각국 정부와 협력해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출 주도형 경제인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특히 취약하다. 반도체(수출 비중 19.6%), 자동차(8.3%), 철강(6.1%) 등 주력 수출품목이 무역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반도체 기술 수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심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그룹은 IRA 대응을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유럽·아시아에 걸친 배터리 생산기지 다변화로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 대선 이후를 대비해 한국이 수출시장 다변화와 산업구조 고도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 첨단산업 육성을 통한 경쟁력 강화, 글로벌 가치사슬(GVC·기업이 제품 생산을 위해 구축한 국제 분업 체계) 참여 확대 등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 장벽 강화가 세계 경제의 장기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각국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와 글로벌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할 경우, 1930년대와 같은 보호무역 악순환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전문가들은 "위기 속 기회도 있다"고 조언한다. 기업들이 무역 긴장, 산업정책, 지정학적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