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온 글로벌 항공산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저비용항공사(LCC)의 선전이 눈에 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2023년 세계 항공 여객 수요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약 88% 수준까지 회복했으며, 2024년에 이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LCC의 약진이다. 2010년 전체 항공시장의 15% 수준이었던 LCC 점유율은 2023년 기준 31%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LCC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저가 모델로는 수익성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LCC들이 프리미엄 서비스 도입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최근 배런스가 보도했다.
미국 최대 LCC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반세기가 넘는 역사상 처음으로 지정좌석제와 레그룸(승객 무릎 앞 여유 공간)이 넓은 좌석을 도입하기로 했다. 일반석 대비 15~20% 높은 요금을 책정할 것으로 알려진 이 프리미엄 좌석은 32인치에서 36인치로 확장된 레그룸과 우선 탑승 혜택을 제공한다. 프론티어항공은 'Up Front Plus' 서비스를 통해 50파운드 수하물 2개 무료 탑승, 좌석 옆 공석 보장 등의 혜택을 제공하며, 스피릿항공도 'Big Front Plus' 프로그램으로 무료 와이파이, 기내 주류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심각한 수익성 악화가 자리 잡고 있다.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의 임금 인상, 기존 항공사들의 공격적인 가격 정책에 대응하느라 비용은 늘어났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경우 올해 주가가 42% 하락했으며,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압박으로 이사회 구성원 교체까지 단행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러한 전략 전환에 대한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프리미엄 서비스를 추구하는 승객들이 이미 확고한 브랜드 가치를 보유한 기존 대형 항공사들을 더 선호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실제로 델타항공이나 아메리칸항공의 프리미엄 이코노미 서비스는 LCC의 신규 서비스보다 15~20% 더 높은 가격에도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이런 LCC들의 고민은 항공기 제조업계의 구조적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에어버스의 A321XLR은 기존 항공기보다 연료 효율이 13% 이상 높고, 최대 4,700해리(약 8,700km)를 비행할 수 있어 대서양 횡단 노선에도 투입이 가능하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보잉이 대항마를 내놓지 못하면서 LCC들은 높은 도입 비용에도 불구하고 에어버스 기종 도입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중국 항공시장의 폭발적 성장 전망은 항공사들의 전략 변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보잉은 향후 20년간 중국에서만 8,830대의 신규 항공기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현재 전 세계 운항 중인 여객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러한 글로벌 LCC들의 변화는 한국 항공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주항공, 진에어 등 국내 LCC들도 최근 중장거리 노선 확대와 기내 서비스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일본, 동남아를 넘어 호주, 미주 노선까지 확장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LCC들의 프리미엄화 전략은 참고할 만한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다. 다만 국내 LCC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 규모와 제한된 자본력을 고려할 때, 점진적이고 선별적인 프리미엄화 전략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LCC들의 프리미엄화 전략은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전통적인 LCC의 강점인 가격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향후 몇 년간 LCC 산업의 성패는 이 미묘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