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리튬 수출국 호주가 글로벌 에너지 전환 경쟁에서 복합적 위기에 직면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와 배터리 원자재 가격 폭락이 겹친 데다,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며 청정에너지 전환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로이터는 호주의 리튬 산업 성장을 방치하면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자유 진영의 공급망 재편 전략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현실적 어려움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미래 에너지 금속 허브로 주목받던 서호주 BHP 니켈 사업이 중단된 상태며, 재개 시점은 수년간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배터리 원자재 가격 폭락이 호주 광물자원 산업을 직격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예상보다 저조한 수요가 겹친 탓이다.
시장 불확실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 전기차를 "사기"라고 지칭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의 전기차 전환을 크게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들이 순수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호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전기화 전환이 더욱 더뎌질 전망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중국이 이미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CATL과 BYD가 세계 배터리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저가형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기술 주도권까지 확보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강화될 경우, 이는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의 분절화를 가속화하고 호주의 입지를 더욱 좁힐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호주의 녹색 에너지 부족이다. 지난달 시드니에서 열린 국제 광업 및 자원 컨퍼런스(IMARC)에서는 이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포테스큐 그룹의 디노 오트란토 CEO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전력 비용 없이는 호주의 자원 강국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호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은 중동이나 중국의 두 배 수준으로, 광물 가공 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태즈메이니아주의 사례는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 지역은 과거 정부 주도의 수력발전소 건설로 알루미늄, 망간, 아연 제련소에 저렴한 전력을 공급하며 성공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현재 호주 정부는 재정 제약과 납세자 부담을 이유로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소극적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진영은 공동 대응에 나섰다. 미국은 다국적 광물안보파트너십(MSP) 구축을 통해 호주 지원을 검토 중이며, 일본과는 이미 희토류 공동 개발과 배터리 기술 협력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다. 민간 부문은 수십억 달러의 초기 투자가 필요한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을 주저하고 있다.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서 수익성 확보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에 필수적인 그린 수소 생산을 위한 대규모 설비 투자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호주 정부의 신중한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호주 광업협회(Minerals Council of Australia)는 미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비하여 아시아와 유럽 시장 다변화를 제안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단지 조성과 주요 광물 가공 시설 확충을 위한 전략적 투자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진영의 결속도 더욱 중요해졌다. 미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비해 일본, 한국, EU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호주산 광물 장기 구매 계약을 확대하고, 현지 가공시설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한국도 '핵심 광물 공급망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호주의 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시장 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자유진영의 경제 안보를 좌우할 중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