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트럼프 당선 당시 극렬히 반대했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이번에는 환영 입장을 표명하며 '실용주의적 협력'으로 급선회했다고 8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기술기업들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빅테크 규제 완화 가능성, 법인세 인하 기대감, AI 등 신기술 분야에서 정부 지원 확대 전망에 기반한다. 특히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와 함께 "미래형 기술" 투자 확대를 통해 미국의 기술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현재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 테슬라 등 '빅테크 7' 기업의 시가총액은 12조 달러를 상회한다. 이는 2023년 미국 GDP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와 기술혁신 드라이브로 2025년 이들 기업의 통합 시가총액이 15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반도체, AI, 우주산업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 기반의 공격적 육성정책을 펼칠 전망이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관세 부과를 통한 리쇼어링(제조업 본국 회귀)을 강화하고, TSMC 등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민 정책도 큰 전환점을 맞는다.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의 발급 방식이 현행 추첨제에서 메리트 기반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연간 85,000개(일반 65,000개, 미국 대학원 졸업자용 20,000개)로 제한된 H-1B 비자의 선발 기준이 근본적으로 변경될 전망이다. 특히 고임금 근로자를 우선 선발하는 메리트 기반 시스템 도입은 실리콘밸리의 인재 채용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고급 기술 인력의 미국 진출 기회는 확대될 수 있지만, 신입급 개발자나 저임금 기술 인력의 채용은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첫 행정부 시절인 2021년 1월, 미국이민국(USCIS)은 "H-1B 비자 프로그램이 주로 신입 사원을 채우고 전반적인 사업 비용을 줄이려는 고용주들에 의해 악용되어 왔다"며 고임금 근로자 우선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한국 기업과 정부도 이런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고급 인력 취업 이민 비자(EB-1·2) 발급이 5,684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인구 10만 명당 10.98명으로 인도(1.44명)의 7배, 중국(0.94명)의 10배에 달한다. 특히 AI·반도체 분야 엔지니어 미국 이주가 급증하고 있어, 국내 기술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이에 한국은 미국의 기술 보호주의 강화에 대비한 전략 수립이 시급하며, 동시에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 진출 시 현지 생산·투자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 기술 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실리콘밸리의 실용주의적 전환과 정부의 기술 육성 드라이브가 맞물리면서 미국의 기술 패권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한국은 자국 인재 유출 방지와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 강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