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8일(현지시각) 패션기업 스티브 매든의 중국 생산 40~45% 축소 결정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특히 주목받는 기업은 애플이다. 세계 최대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애플은 이미 일부 아이폰 생산라인을 인도로 이전했으며, 2025년까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에서 에어팟, 애플워치 등 전체 생산량의 최대 30%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테슬라 역시 중국 상하이 공장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인도 타밀나두 주와 50억 달러 규모의 공장 설립을 논의 중이며, 인도네시아에서도 부지 물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미국산이 아닌 제품에 대해서 원산지와 관계없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제3국 이전을 선호하고 있다. 생산비용 절감 효과가 관세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이나 멕시코에서 생산할 경우 20~30%의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미국 내 생산보다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의 중국 이탈은 트럼프가 공약한 60% 대중 관세에 대한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으로 해석된다. S&P 글로벌은 보고서를 통해 "60% 관세는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실제 부과될 가능성은 낮으며 협상의 시작점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1기 당시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는 대부분 10~15% 수준이었다.
화학, 제약 기업들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존슨앤존슨, 화이자 등 주요 제약사들은 원료의약품(API)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 중이며, 듀폰, 다우케미컬 등 화학기업들도 동남아 생산기지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이번 움직임은 트럼프 1기와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된 탈중국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는 양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미중 갈등 심화와 탈세계화 기조로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 확산됐는데,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으로 이 추세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생산기지 이전이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생존형 공급망 재편'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분석한다. 관세 인상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기업 생존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도 기회와 위험이 공존한다. 삼성전자는 이미 베트남에서 스마트폰 생산의 60%를 담당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도 생산기지 확대를 추진 중이다. LG전자도 베트남 하이퐁 공장을 동남아 수출거점으로 육성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인도네시아를 동남아 허브로 삼아 전기차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한국 기업들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반도체의 경우 미국 칩스법과 맞물려 미국 내 투자 압박이 거세질 수 있으며, 자동차 산업은 신규 관세나 수입규제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리스크 분산을 위해 생산기지 다변화와 현지화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계는 트럼프의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공급망 다변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인도가 새로운 글로벌 생산 허브로 부상할 전망이다. 베트남은 2023년 말 기준 삼성, 애플, 인텔 등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1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인도는 2025년까지 전자산업 생산규모를 3000억 달러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지정학적 리스크와 비용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스마트 디커플링'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