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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3대 석유기업 통합 검토...글로벌 에너지시장 새로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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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3대 석유기업 통합 검토...글로벌 에너지시장 새로운 '변수'

글로벌 에너지시장서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양강 구도 강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석유기업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석유기업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가운데 러시아의 대규모 석유기업 통합 계획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9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가 로스네프트를 중심으로 가스프롬 네프트와 루코일을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기업 통합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전략적 행보라는 평가다.
사우디 아람코가 보유한 세계 최대 원유 생산량은 하루 1100만 배럴이다. 통합이 검토되는 러시아 3사의 일일 생산량은 로스네프트 380만 배럴, 루코일 210만 배럴, 가스프롬 네프트 140만 배럴로, 통합 시 730만 배럴 규모의 세계 2위 석유기업이 탄생한다. 이는 미국 최대 석유기업 엑손모빌의 일일 생산량 260만 배럴의 약 3배에 해당한다.

통합 3사의 석유 매장량 합계는 370억 배럴로, 쿠웨이트의 총매장량과 비견된다. 이러한 대규모 통합은 러시아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대등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통합 구상의 핵심은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고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루코일이 보유한 두바이 기반 무역회사 리타스코(Litasco)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석유 수출을 확대하고, 인도와 중국 등 주요 구매국들로부터 더 높은 가격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제재로 '그림자 석유(Shadow Oil)' 거래를 확대했다. 러시아산 원유는 국제 시장에서 기준유인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평균 15~25달러 할인돼 거래됐다. 2023년 기준 러시아의 우랄스유(Urals oil) 판매가격은 배럴당 평균 60~65달러로, 같은 기간 브렌트유 평균가격 80~85달러 대비 25% 낮은 수준이었다.

제재 초기인 2022년 하반기 할인 폭은 배럴당 30~35달러까지 확대됐다. 러시아의 일일 수출량 500만 배럴을 고려하면, 가격 차이에 따른 연간 수익 손실은 약 450억~500억 달러로 추정됐다. 우회 거래에 따른 물류 비용과 보험료 상승으로 실질 수익률은 더욱 감소했다.

리타스코의 거래 네트워크와 신용장 발행 능력 활용 시 러시아는 현재보다 배럴당 10~15달러 높은 가격에 원유 판매가 가능할 전망이다. 이는 연간 200억~250억 달러의 추가 수익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통합은 로스네프트가 가스프롬의 자회사인 가스프롬 네프트와 민간 기업 루코일을 단계적으로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루코일 최대주주 바짓 알렉페로프의 지분(28%) 매입이 핵심 변수다. 러시아 정부는 거래 자금을 국부펀드나 국영은행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다.

통합 기업의 명칭은 '로스네프트가스(Rosneftgaz)' 또는 '루스네프트(Rusneft)'가 유력하다. 통합 절차는 2024년 내 기본 합의 도출, 2025년까지 단계적 완료를 목표로 한다. 이고르 세친 현 로스네프트 회장이 통합 기업 수장으로 거론된다.

단기적으로 러시아의 협상력 강화는 원유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인도·중국 등 주요 수입국들은 단일 창구 거래로 가격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 반면, 2025년 이후 예상되는 글로벌 석유 공급 과잉 상황에서 통합 기업 출범은 러시아의 시장 지배력 유지에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중장기로도 통합은 세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양강 구도가 강화될 수 있다. 둘째, 서방 제재를 우회하는 새로운 국제 에너지 거래 시스템이 확립된다. 셋째, 친환경 에너지 전환 압력에 대응하는 화석연료 산업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다. 서방과 비서방 진영 간 에너지 거래의 이원화가 심화되며, 국제 유가의 변동성도 확대될 전망이다. 비산유국들은 공급선 다변화와 신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한다.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통합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원유 수입에서 러시아산 비중은 2.7%, 중동 의존도는 63%다. 연간 10억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한국은 러시아 통합 기업 출범에 따른 글로벌 원유가격 상승에 취약하다. 중동 산유국들의 가격 정책 조정 가능성도 원유 도입 단가 상승 요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세 가지 대응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중동·미주·아프리카로 수입선 다변화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둘째, 전략비축유 확대와 장기 구매계약 확대를 통한 가격 변동성 대비다. 셋째, 친환경 에너지 전환 가속화와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유지의 투 트랙 전략이다. 한국의 우수한 정유 기술과 설비를 활용한 고부가가치 석유제품 생산 강화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통합 구상이 실현되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것이라면서 트럼프 2기 정부의 미국의 대러 제재 완화 가능성도 존재해 러시아의 에너지 패권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각국의 전략적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