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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고관세, 미 중소기업은 "환영"·대기업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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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고관세, 미 중소기업은 "환영"·대기업은 "글쎄"

60% 고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속화, 기업 규모별 엇갈린 반응

트럼프 재집권이 말하는 미국의 제조업 정책 변화.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재집권이 말하는 미국의 제조업 정책 변화.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 제조업계가 향후 정책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중국산 제품에 대한 60% 관세 부과 공약은 미국 제조업 지형도를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고 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업계는 이를 기회로 보는 측과 위기로 보는 측으로 나뉘어 있다.
지난 4년간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제조업 부흥을 이끌어왔다. 특히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인텔, TSMC, 삼성전자 등이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단행했고 전기차 배터리 공장 설립도 활발히 진행됐다. 이는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제조업 부흥 정책은 직간접 투자 유치 규모가 5000억 달러를 웃돌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산업정책으로 평가된다. 창출된 일자리는 직접 고용만 15만 개 이상이며 간접 고용까지 포함하면 100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성과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일자리의 질적 수준이다. 신규 창출된 제조업 일자리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34.5달러로 전체 산업 평균보다 13% 높은 수준이다. 반도체와 청정에너지 분야는 이보다 더 높은 임금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대규모 투자는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졌다. 통화량이 2021년 대비 15% 증가했고 제조업 분야의 임금 상승률이 연 5.8%를 기록하면서 물가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산업용 원자재 가격도 35% 상승하며 생산비용 증가를 초래했다.

이러한 성과와 부작용은 미국 경제의 구조적 전환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와 공급망 안정성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당선자의 고관세 정책은 이전 정부의 산업정책과는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WSJ 보도에 따르면 제조업계의 반응은 기업 규모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HM 매뉴팩처링 같은 중소기업들은 관세 정책이 미국 내 생산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며 환영하는 반면, 스탠리 블랙앤데커나 폴라리스 같은 대기업들은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베트남이나 멕시코 등으로 이전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높은 관세가 저가 수입품과의 경쟁에서 보호막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HM 매뉴팩처링 같은 기업들은 자동차 부품과 항공우주 부품을 생산하는데 상대적으로 작은 생산량과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한다.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 해외 경쟁자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어 국내 생산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대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과 대규모 생산시설 운영 부담을 우려한다. 스탠리 블랙앤데커의 경우 이미 자동화된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이 예상된다. 폴라리스는 중국산 부품 관세로 연간 1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있어 생산기지를 베트남이나 멕시코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결국 관세 정책이 의도한 '리쇼어링' 대신 '니어쇼어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기업들의 니어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 전략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는 한국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미 간 협력이 더욱 긴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는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에 1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와 LG는 조지아와 테네시에 각각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했다. 현대차그룹도 조지아주에 55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는 등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가속화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4월 기준 미국에 진출한 한국 사업장은 총 2432개에 달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은 이들 기업에 양면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긍정적 측면에서는 이미 미국에 생산 기반을 구축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관세로 인해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반면 우려되는 부분은 글로벌 공급망 차원의 리스크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현지 공장들도 상당수의 부품과 소재를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고관세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이들 기업은 공급망을 시급히 재편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특히 단기간에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품목의 경우 생산 차질이나 비용 상승 위험이 있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이나 인도 등 제3국으로의 부품 조달처 확대를 모색하는 한편, 미국 내 부품 생산기반 확충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테일러 공장 가동 시기를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연기했는데, 이는 반도체 시장 상황과 함께 미국의 정치·경제적 불확실성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 공장 부품 조달 효율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고관세 정책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고 무역 분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 특히 중국의 보복 조치가 이어질 경우 글로벌 교역 질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상당한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 등 전통 제조업체들의 주가는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글로벌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 현실화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미국 제조업 부흥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무역질서 변화라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