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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트럼프發 보호무역 현실화로 위기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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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트럼프發 보호무역 현실화로 위기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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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위기감 고조. 사진=로이터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침체의 늪에 빠진 EU 경제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함에 따라 EU의 핵심 수출 시장인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9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최근 발표된 무역 통계는 EU의 경제적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EU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2023년 기준 총수출의 약 19%로, 금액으로는 5070억 유로에 달한다. 특히 상위 3대 수출품목인 제약품(600억 유로), 자동차(450억 유로), 의료용품(400억 유로)이 전체 대미 수출의 28.6%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독일경제연구소(IFO)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가 예고한 10~20% 수준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독일 경제는 2028년까지 1.2%에서 1.4% 정도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자동차 업체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기업의 대미 수출은 전체 매출의 18% 수준에 달한다.

수출 감소 파장은 단순한 무역수지 악화를 넘어선다. EU 주요 수출 기업들은 이미 생산기지 재편을 검토하고 있다. 폭스바겐이 독일 내 3개 공장 폐쇄를 결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미국 현지 생산을 강화하고 있지만, 고성능 모델은 여전히 본국 생산에 의존하고 있어 관세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장기적 산업 경쟁력 약화다. EU는 값싼 러시아 에너지의 종말, 전기차 전환 지연, 중국 시장 의존도 심화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미국 시장마저 위축된다면 산업 공동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 이는 EU의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 성장 잠재력을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이 될 전망이다.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S&P500 지수는 3.7% 상승한 반면, 유로 Stoxx 50과 FTSE 100 지수는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베스타스(청정에너지), BMW(자동차), 네슬레·유니레버(소비재), 로슈(제약) 등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EU27은 2023년 기준 세계 GDP의 약 17%를 차지하는 주요 경제권이자 4억5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세계 최대 단일시장이다. EU는 특히 자동차, 제약, 화학, 기계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글로벌 가치사슬(GVC)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EU 경제의 침체는 글로벌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에 대한 영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U는 중국, 미국에 이어 한국의 제3위 교역 파트너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3년 양자 교역규모는 1290억 달러를 기록했다. EU와 미국 간 통상갈등이 심화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EU에 생산기지를 둔 한국 기업들도 미국의 관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다만 EU는 이미 2017-2021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을 경험한 바 있다. 당시 EU는 미국의 철강 관세(25%)와 알루미늄 관세(10%) 부과에 맞서 보복 관세로 대응했고, 결국 2021년 양측이 관세를 유예하는 합의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EU는 보다 체계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EU는 2030년까지 회원국들의 조달 예산 50% 이상을 역내 기업에 배정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며,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는 최근 관료주의 축소, 전략산업 지원, 선별적 관세 부과 등 EU 경제의 구조적 혁신을 제안했다.

EU가 트럼프 1기의 교훈을 바탕으로 이번 위기를 단순한 보호무역 대응을 넘어 산업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는 EU 경제의 미래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 질서의 재편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