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가 45억 위안(약 7800억 원) 규모의 판다채권을 발행하며 중국 통화의 국제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13일(현지시각) 홍콩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채권 발행은 중국의 통화 국제화 전략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HSBC가 발행한 3년 만기 판다채권은 기본 발행 규모인 30억 위안을 크게 웃돈 것으로, 주문액이 목표액의 1.88배를 기록했다. 연 2.15%의 쿠폰금리가 제시됐으며, 중국 청신 신용평가그룹으로부터 최고 등급인 AAA를 획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발행이 2022년 중국 정부가 판다채권 수익금의 해외 송금을 자유화한 이후 HSBC의 첫 발행이라는 점이다. 이전에는 해외 기업들이 국가외환관리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중국인민은행(PBOC) 루레이 부총재는 "중국 금융부문이 개방과 협력을 지속 추진할 것"이라며 "해외 금융 투자자들을 위한 우호적 환경 조성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1~10월간 100개의 판다채권을 통해 1780억 위안이 조달됐다. 이는 2023년 전체 발행액인 1545억 위안을 이미 넘어선 수준이다.
HSBC 아시아태평양 공동 CEO 데이비드 랴오는 "위안화의 글로벌 사용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비해 아직 제한적"이라며 "국제화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홍콩금융관리국(HKMA) 통계에 따르면, 홍콩의 위안화 예금은 9월까지 6개월 연속 1조 위안을 상회했다. 이는 홍콩이 글로벌 위안화 허브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HKMA 에디 웨 와이만 CEO는 "시장 수요 증가에 따라 유동성 풀 확대가 필요하다"며 "무역 결제, 채권 발행, 포트폴리오 투자 등 홍콩의 위안화 관련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금융시장 개방 확대와 디지털 혁신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특히 미·중 갈등과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속에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첫째, 금융시장 개방 확대다. 골드만삭스 중국금융연구팀은 최근 보고서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접근성 개선이 시급하다"며 "특히 채권시장 개방과 규제 투명성 제고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해외 투자자들의 중국 채권 보유액은 2024년 10월 기준 3조2000억 위안으로, 전체 시장의 2.5%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14%), 일본(12.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둘째, 국제 금융 인프라 구축이다. "디지털 위안화(e-CNY) 발전이 핵심"이라고 중국금융학회 왕리 부회장은 강조한다. 그는 "국경 간 결제시스템 현대화와 함께 디지털 통화가 위안화 국제화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중국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 결제 시범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과 협력해 국경 간 결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셋째, 홍콩 금융허브 강화다. 홍콩상하이은행(HSBC) 아시아태평양 공동 CEO 데이비드 랴오는 "홍콩의 위안화 유동성 풀을 현재의 5~10배로 확대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위안화 금융상품 다양화와 시장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몇 가지 위험 요인도 지적한다. 도이치방크 아시아팀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중 갈등 심화 가능성, 중국 경제 성장 둔화 우려,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디지털 금융 보안 리스크 등과 같은 도전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트럼프의 재집권은 위안화 국제화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스탠다드차타드 빌 윈터스 CEO는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도 이러한 과제를 인식하고 있다. 중국인민은행 관계자는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시장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방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2025년이 위안화 국제화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UBS 글로벌리서치센터는 "2025년까지 국제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이 현재 5%에서 10%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론적으로 위안화의 성공적인 국제화를 위해서는 시장 개방, 디지털 혁신, 리스크 관리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홍콩의 역할 강화가 이 과정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