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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들, 트럼프 재집권에도 "中 시장 포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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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들, 트럼프 재집권에도 "中 시장 포기 못해"

지멘스 CEO "시장점유율 방어할 것"...獨 정부와 기업 간 입장차 뚜렷

트럼프 2.0 시대, 유럽과 중국 사이는 어떻게 되나?           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2.0 시대, 유럽과 중국 사이는 어떻게 되나? 사진=로이터
트럼프 재집권이 현실화되면서 미·중 갈등 심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 기업들이 '중국 시장 사수냐, 리스크 감소냐'라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특히 독일 정부의 '탈중국' 정책 기조와 기업들의 실리 추구 사이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멘스의 롤랜드 부시 CEO는 최근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고 더 나아가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19세기부터 중국에 진출한 지멘스는 현재 3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전체 수익의 10% 이상을 중국에서 창출하고 있다.
부시 CEO는 "우리는 중국에서 매우 좋은 평판과 고객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사업 축소 계획은 없다"고 단언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다른 입장이다. 로베르트 하벡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은 "러시아의 저가 가스와 영원한 성장 시장으로 여겼던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며 "마치 도핑을 맞은 것 같은 상황"이라고 경계감을 드러냈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을 '체계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기업들에 대중국 의존도 감소를 계속 요구하고 있으나, 기업들은 수익성 보호를 위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멘스를 비롯한 유럽 기업들은 '위험감소(de-risking)' 차원에서 다각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부시 CEO는 "코로나19 이후 중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어떻게 의존도를 분산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인도에 대해 현재 3%인 매출 비중을 10%까지 확대하고, 동남아시아의 생산기지를 확대하는 한편, 멕시코를 통한 미국 시장 접근성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다.

부시 CEO는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국제 무역 질서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미·중, 미·유럽 간 무역 규모가 너무 커서 완전한 분리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대만 리스크에 대해서는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다양한 시장에서의 운영을 통해 특정 공급업체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기본 전략"이라고 밝혔다.

"유럽 기업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독일외교협회(DGAP)의 마커스 카임 선임연구원은 분석했다. 그는 "중국 시장의 중요성과 정부의 위험 감소 요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유럽경제연구소(IFO)의 클레멘스 퓨스트 소장은 "유럽 기업들의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완전한 탈중국이 아닌 위험 분산이 현실적"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미·중 갈등이 심화할 경우, 유럽 기업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특히 독일의 2월 조기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기업 간 입장 차이가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 기업들이 중국 내 필수사업 유지, 신규 투자는 대체 시장으로 분산, 공급망 다변화 가속화, 정부와의 소통 강화 등과 같은 전략적 선택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유럽 기업들의 '중국 위험 감소' 전략이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독일 지멘스의 사례는 리스크 관리와 시장 경쟁력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한국 기업들에 유용한 시사점을 던진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2023년 기준 22.8%로 주요 교역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반도체(33.2%), 디스플레이(31.5%) 등 핵심 산업의 의존도가 30%를 웃돈다. 이는 중국발 리스크에 한국 경제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세 가지 측면에서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첫째, 산업별 차별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스마트폰 생산의 상당 부분을 베트남으로 이전했지만,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사업은 중국 시장을 고수하고 있다. LG화학도 범용 제품은 동남아 생산을 확대하는 반면, 첨단 소재는 중국 내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둘째, 공급망 재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부품 조달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인도·동남아는 물론 멕시코까지 공급망을 확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 소재 조달처를 다각화하며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셋째, 시장 다변화다. 대기업들은 인도·동남아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인도는 중국을 대체할 '넥스트 차이나'로 주목받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코트라(KOTRA)의 지원을 받아 신흥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급망 재편 지원단'을 출범하고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리스크 관리는 필수"라고 한 대기업 임원은 말했다. 그는 "결국 기술 경쟁력 확보가 핵심"이라며 "이를 통해 협상력을 높이고 시장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독일 지멘스의 경우, 19세기부터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인도·동남아시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리스크도 분산하고 있다.

향후 미·중 갈등이 심화할 경우 한국 기업들의 선택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특히 트럼프의 재집권이 현실화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결국, 한국 기업들에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중국 리스크는 최소화하되 기회는 놓치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