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과 함께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우세를 점하면서 미국의 기술 정책이 큰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현지 시각) 워싱턴 포스트는 AI 규제, 빅테크 기업 견제, 대중국 기술 패권 경쟁 등에서 강경 기조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글로벌 기술 산업 생태계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기술 정책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AI 규제 접근법이다. 일론 머스크가 AI 특별고문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상무부 주도의 AI 안전 연구소 영구화와 국가 AI 연구자원(NAIRR) 확대가 추진될 전망이다. 이는 AI 기술 발전을 장려하면서도 안전성 확보에 방점을 둔 '관리된 혁신' 기조를 시사한다.
머스크는 최근 xAI를 통해 생성형 AI 그록(Grok)을 출시했으며, 오픈AI 이사회 해임 사태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 바 있다. 그가 주장해온 AI 안전성 강화와 윤리적 가이드라인 수립은 미국의 AI 정책 방향과도 일치한다.
AI 기술 경쟁에서 미국의 전략적 움직임은 확고하다. 현재 의회에서 검토 중인 'AI 혁신 촉진법(AI Innovation Acceleration Act)'은 AI 스타트업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도입, 세제 혜택 확대, 정부 조달 간소화 등을 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국가 AI 연구자원(NAIRR) 프로그램은 미국의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정책이다. 미 국립과학재단(NSF)이 주도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계와 스타트업들은 고성능 컴퓨팅 자원, 대규모 데이터셋, 테스트베드 등을 지원받게 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도 강화될 전망이다. 아동 온라인 보호법(KOSA)은 13세 미만 사용자의 데이터 수집을 제한하고, 플랫폼 사업자에게 연령 확인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화당은 또한 섹션 230 개정을 통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콘텐츠 관리 책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중국 기술 패권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진영의 '프로젝트 2025'는 반도체 법를 기반으로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신흥 기술 전반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가속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 전략이다. 한국, 일본, 대만과의 기술 협력을 강화해 핵심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재 측면에서는 화웨이식 제재의 확대 적용, 중국의 AI 칩 접근 차단, SMIC, YMTC 등 중국 기업들에 대한 추가 제재가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기술 산업에 양면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심화는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기술력과 생산 기반을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미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세 가지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첫째, 미국의 기술 정책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한미 간 기술 협력을 강화하되, 지나친 의존도는 경계해야 한다. 셋째, AI 등 신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자체 규제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기술 정책은 글로벌 기술 산업의 지형도를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를 위기이자 기회로 인식하고, 전략적이고 유연한 대응을 통해 기술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