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패권의 최후 승자를 가르는 AI 경쟁이 중국 기업들의 실리콘밸리 진출 가속화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현지시각)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메이투안 등 중국 주요 기술 기업들이 미국의 강력한 기술 제재 속에서도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AI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향후 10년간 AI 경쟁이 핵무기보다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상황에서,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이 새로운 전선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 중국 빅테크의 실리콘밸리 공략
중국 기업들은 다각적으로 실리콘밸리 AI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현지 사무소를 대폭 확장하는 한편, 미국 주요 기술 기업 출신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연봉과 혜택을 제시하며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샤오미의 경우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일부 지원자에 대해서는 필기시험을 생략하는 '패스트 트랙' 채용을 도입했다.
알리바바는 서니베일에 AI 연구팀을 설립하고 이를 별도 법인으로 분사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알리바바가 AI 기반 검색엔진 '아씨오(Accio)' 개발을 위해 응용과학자, 기계학습 엔지니어, 제품 마케팅 관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영입에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배정했다"고 전했다.
바이트댄스는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확고한 AI 기반을 구축했다. 틱톡 AI 통합팀과 대규모 언어모델 '두바오(Doubao)' 개발팀 등 복수의 연구조직을 운영하며, 중국과 싱가포르 연구진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특히 틱톡 AI 기능 개선 등 매력적인 프로젝트를 전면에 내세워 우수 인재 영입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 규제 우회와 기술 확보의 투트랙 전략
중국 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 AI 칩 수출을 제한하는 등 하드웨어 규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우회해 소프트웨어와 인적 자원 확보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재 미국 내 법인을 통한 연구개발 활동에는 제약이 없다는 규제의 빈틈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한 연구원은 "중국 기업의 이런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추가 규제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미 상무부는 최근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에게 AI 모델 훈련 관련 정보 보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과 공화당의 상하원 장악으로 대중 기술 견제는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한층 강력하게 진행될 것이 명확하다.
◇ 한국 AI 산업에 주는 함의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AI 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중 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독자적인 AI 기술력 확보가 시급해졌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은 AI 인재 확보와 기술 개발 투자를 더 가속해야 할 시점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삼성전자의 AI 반도체 개발 투자와 네이버의 초거대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 공개는 고무적이나, 글로벌 AI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의 더 과감한 투자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글로벌 AI 산업의 향방
AI 분야 전문가들은 글로벌 AI 산업의 향방이 기술 혁신과 인재 확보 능력,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세 가지 변수에 달려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가능성과 미 의회의 대중 견제 강화 움직임은 향후 글로벌 AI 산업 지형을 크게 바꿀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 의회는 이미 중국 기업들의 미국 내 활동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으며,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2.0 체제에서 대중 기술 수출 통제는 더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중국 기업들의 실리콘밸리 진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며, 글로벌 AI 산업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릴 것이다.
이처럼 AI를 둘러싼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더욱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AI가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분야로 부상한 만큼, 기술 개발과 인재 확보, 그리고 국제 협력 관계 구축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