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이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워싱턴포스트가 21일(현지 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이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에도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AI 산업의 급성장이 초래한 전력난은 예상치 못한 딜레마를 야기하고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만으로 미국 가스 화력 발전의 10~30%에 달하는 추가 소비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220개의 새로운 가스 발전소가 개발 중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석탄 발전소 폐쇄 계획마저 보류되고 있다. 25~40년 발전소 수명을 고려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2035년 전력망 무공해화 목표는 실현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이는 결국 AI 산업의 급속한 성장이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화석연료 의존 방향으로 다시 돌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데이터센터 한 곳의 전력 사용량이 중간 규모 도시와 맞먹는 상황에서, 전력회사들은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가스 발전소 건설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빅테크 기업들의 이중적 위치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은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약속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지역 전력망의 혼합 전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력회사들 역시 안정적 전력 공급과 기후 목표 달성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도미니언 에너지의 CEO 로버트 블루는 "신뢰할 수 있는 전력 공급을 위해 가스 발전이 필요하다"며 현실적 한계를 토로했다.
실제로 버지니아의 주요 전력회사는 2045년까지의 전력망 배출 제로화 목표를 유예해달라고 규제 당국에 요청한 상태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전기자동차 보급으로 인한 수요의 3배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처럼 빅테크 기업들의 환경 목표와 전력회사들의 현실적 제약 사이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재집권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트럼프 진영의 발전소 배출 규제 폐지 공약은 화석연료 발전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듀크 에너지 등 일부 전력회사들은 트럼프 당선에 석탄발전소 폐쇄 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단순 개별 기업 입장 표명을 넘어 미국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트럼프 행정부에 고위 관료 출신 기업가들은 넷 제로(net-zero) 목표가 수익과 충돌할 때 승리하는 것은 수익이라며 기업들의 현실적 입장을 지지한다.
이는 매년 계속되는 사상 최고의 무더위와 각종 자연재해가 잇따라 발생하는 최근의 기후위기 악화를 막아야 할 미국의 기후 대응에 대한 후퇴를 의미하며, 국제사회의 기후 대응 약화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위기가 글로벌 청정에너지 전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과 압박이 거세지자 빅테크 기업들은 더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는 한화큐셀, OCI, 두산중공업 등 기술력을 인정받은 한국 기업들에 글로벌 시장 진출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결국, AI 산업의 성장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두 가지 시대적 과제의 조화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더욱 혁신적이고 친환경적인 데이터센터 운영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환경 문제를 넘어 AI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의 협력적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