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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러 에너지 제재의 두 얼굴, 봉쇄와 선점 동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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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러 에너지 제재의 두 얼굴, 봉쇄와 선점 동시 진행

미국의 가즈프롬방크 제재 강화와 서방의 에너지 자산 선점 경쟁 조짐
러시아 에너지 제재 강화 속 서방 자본의 전략적 포석과 유럽의 생존 게임

국제 에너지 시장이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국제 에너지 시장이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국제 에너지 시장이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러시아 가즈프롬방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며 압박을 가중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2025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러시아 에너지 자산을 둘러싼 서방 자본의 물밑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 심화되는 대러시아 제재와 유럽의 딜레마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2일(현지 시각) 가즈프롬방크에 새로운 제재를 발표했다. 이는 유럽의 러시아 가스 결제 시스템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2월 20일부터 시행되는 일반 거래 제한과 2025년 6월 28일까지 이어지는 사할린-2 석유·가스 프로젝트 관련 거래 제한은 유럽-러시아 간 에너지 교역에 실질적 장애물로 작용할 전망이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등 러시아 가스에 의존도가 큰 국가들은 대체 결제 방안 모색에 나섰으나, 단기간 내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에 따르면, 헝가리의 경우 전체 가스 소비의 85%, 슬로바키아는 66%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가즈프롬과의 장기 계약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 공급처를 찾기가 쉽지 않고, LNG 터미널 등 필요 인프라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유럽 내 에너지 안보 우려를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 잠재적 변화 조짐, 서방 자본의 전략적 접근


강경 제재 정책 이면에서, 일부 서방 자본은 이미 러시아 에너지 자산 선점을 위한 포석을 두고 있다.

22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기업가 스티븐 린치의 노르트스트림2 운영사 인수 시도는 이러한 움직임의 대표적 사례다. 연간 550억 입방미터의 가스 수송능력을 보유한 이 인프라는 향후 러-서방 관계 정상화시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 특히 린치의 행보는 단순한 사업적 결정을 넘어 지정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의 과거 이력을 살펴보면, 2007년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와의 협력을 통해 유코스 자산 매각을 주도한 바 있으며, 당시 푸틴 정부의 자산 국유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비록 네덜란드 대법원이 해당 거래에 대해 "기본적 법적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결했지만, 이는 린치가 러시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미 재무부가 "노르트스트림2 재가동이 미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음에도 이러한 인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향후 미-러 관계 변화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주요국들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최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푸틴과의 통화는 이러한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독일 언론 디 차이트(Die Zeit)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 정관계 주요 인사들이 러시아 고위 관료들과의 비공식 접촉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독일 정부가 대러 제재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탐색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독일 산업계의 강력한 요구가 자리잡고 있다. 독일연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산 저가 에너지 공급 중단 이후 독일의 제조업 생산지수는 2023년 대비 7.2% 하락했으며, 특히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독일 정부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더욱이 현재의 가즈프롬방크 제재 강화 조치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안보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어, 대체 결제 시스템 구축이나 관계 개선을 통한 해결책 모색이 더욱 시급해진 상황이다.

◇ 향후 시나리오와 전망


단기적으로 러시아 에너지 시장은 상당한 혼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즈프롬방크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제재는 유럽과 러시아 간 연간 약 1,500억 유로 규모의 에너지 거래 결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교란시킬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러시아로 하여금 대체 결제 수단을 모색하게 만들 것이며, 그 과정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러시아의 대중국 가스 수출은 2023년 대비 40% 증가했으며, 위안화 결제 비중도 6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런 긴장 국면은 점진적으로 완화될 여지가 있다. 특히 2025년 미국 신행정부 출범은 대러시아 정책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현재 가시화되고 있는 서방 자본의 러시아 에너지 자산 인수 시도는 이러한 변화를 준비하는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일부 서방 기업들은 이미 러시아 주요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경제 관계 정상화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관계 개선은 급진적이기보다 단계적이고 제한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행 상황, 국제사회의 여론, 그리고 각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 등 다양한 변수들이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와 서방의 에너지 협력은 완전한 단절도, 완전한 정상화도 아닌, 제한적이고 전략적인 협력의 형태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제재 강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과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서방과 경제관계 재정립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변화에 대비한 한국의 에너지 안보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러시아산 LNG가 한국 전체 LNG 수입의 약 12%를 차지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결제 시스템 변화와 공급선 다변화에 대한 구체적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