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정치적 리스크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가운데, 애플 CEO 팀 쿡의 '실용적 리더십'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 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쿡의 접근법은 기업과 정부 간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쿡이 보여준 '실용적 리더십'은 세 가지 차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탑다운 외교' 전략이다. 쿡은 로비스트를 통한 관행적 소통 대신 CEO가 직접 나서는 방식으로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 WSJ에 따르면, 쿡은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딸 이방카와의 관계 구축을 통해 백악관과의 소통 채널을 확보했다.
둘째, '데이터 기반 협상' 전략이다. 2019년 중국산 제품 관세 면제 획득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쿡은 관세 부과가 아이폰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경쟁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하며 트럼프를 설득했다. 셋째, '상호 이익 극대화' 전략이다. 애플은 텍사스 오스틴 생산시설 유지를 통해 트럼프의 미국 제조업 부흥 정책에 호응하면서 기업 이익도 확보했다.
현재 애플은 새로운 도전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반독점 규제 압박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애플의 앱스토어 관행에 제재를 가했으며, 미 법무부도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 혐의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미중 무역 갈등 심화도 큰 도전이다. 애플의 주요 생산기지가 중국에 있는 상황에서, 무역 제재 강화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애플은 생산기지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WSJ에 따르면 애플은 인도에서의 생산을 확대하고, 일부 제품의 생산 거점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등 리스크 분산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과제들에 대해 애플은 체계적인 대응을 펼치고 있다. 트럼프의 재집권에 대비해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규제 리스크 관련 대응이 주목된다. WSJ에 따르면, 애플은 반독점 이슈에 대해 유럽에서 제3자 결제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허용하는 등 규제 당국과의 잠재적 충돌을 미리 완화하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언급한 빅테크 기업 규제 강화 가능성에 대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공급망 측면의 대응도 가속화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강경책을 예고한 만큼, 애플은 생산기지 다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WSJ는 애플이 인도와 베트남으로의 생산 이전을 확대하는 한편, 미국 내 부품 조달 네트워크 구축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투자 확대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에 부응하면서 동시에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는 이중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투트랙 전략은 쿡이 첫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구축한 '실용적 리더십'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규제 당국과의 관계 개선과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트럼프 재집권 시대의 정치적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 보잉,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유사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WSJ는 이들 기업이 CEO 차원의 직접 소통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한국의 첨단 산업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서는 현지 투자 확대와 함께 정부와의 전략적 소통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결론적으로 기업가 출신 트럼프의 거래형 리더십 특성을 고려할 때, 기업의 정치적 리스크 관리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정부 관계를 넘어 전략적 차원의 리스크 관리가 기업 생존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