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법체계가 거대 자본의 정치적 각축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6일(현지 시각) 일론 머스크가 전국의 진보 성향 검사들을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美 사법 행정의 근본적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간 美 사법 행정에서는 진보 진영이 주목을 받았다. 헝가리 출신 투자자이자 자선사업가인 조지 소로스(93, 추정자산 65억 달러)가 지난 10년간 진보적 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전국의 지방 검사 선거에 약 5000만 달러를 지원하면서다. 그가 지원한 검사들은 대량 수감 감소, 형사사법 제도의 형평성 개선, 소수자 권리 보호 등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해왔다.
특히, 소로스는 2020년 BLM(“흑인의 삶도 소중하다”)의 시위 이후 형사사법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 성향의 검사들을 적극 지원했다. 이들은 경미한 범죄에 대한 기소 기준을 완화하고, 빈곤층과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적 처벌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소로스의 행보는 진보 진영에서는 사회정의 실현으로, 보수 진영에서는 범죄 증가의 원인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이런 가운데 머스크(53, 추정자산 3480억 달러)가 사법 행정 개혁에 나선 것이다.
머스크와 소로스의 대립은 단순한 개인 간 경쟁을 넘어 미국 사법체계의 이념적 대결을 상징한다. 머스크는 자신의 정치활동위원회(America PAC)를 통해 소로스가 지원한 진보 성향 검사들이 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판하며, 이들의 재선을 저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머스크의 검찰 개입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9월 그는 테슬라 본사가 있는 텍사스 트래비스 카운티의 진보 성향 검사 호세 가르자 해임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법집행법변호기금의 제이슨 존슨 회장은 “머스크가 소로스보다 40세 이상 젊고 자산규모도 5배 이상 크다는 점을 들어, 향후 그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머스크의 정치적 야망이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트럼프 캠페인에 1억1800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으며, 차기 정부 효율성 부서 공동 책임자로 지명되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후원을 넘어 규제 완화와 기업 친화적 정책을 추구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2024년에는 소로스 계열 검사들의 임기가 다수 만료된다. 맨해튼의 앨빈 브래그, 필라델피아의 래리 크래스너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2025년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사법체계가 보수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범죄 처벌 강화, 기업 규제 완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검찰 인사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거대 자본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사법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 거대 자본의 사법체계 개입 견제 등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국, 머스크의 검찰 개입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정의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