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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역설, 강해질수록 흔들리는 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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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역설, 강해질수록 흔들리는 패권

기축통화인 달러, 1달러의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기축통화인 달러, 1달러의 모습. 사진=로이터

세계 경제가 큰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각) 트럼프의 고강도 관세 위협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국가들은 기존 달러 중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수출을 통해 열심히 달러를 벌어도,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나 경제 위기로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자국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경험을 반복해왔다. 2008년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시기처럼 미국이 달러를 대량 공급할 때마다 달러 자산을 보유한 국가들은 큰 손실을 겪었다.

이러한 경험을 한 브릭스+ 국가들은 "왜 우리가 미국 달러로만 국제 거래를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국 화폐로도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마치 '달러'라는 하나의 공용어만 쓰던 세계 경제가 여러 나라의 언어로도 소통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관세 부과로 인한 수입품 가격 상승과 무역량 감소는 일반적으로 달러 약세를 불러오는 요인이지만, 역설적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인해 달러는 더욱 강세를 보이고 있다. SWIFT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8월 기준 글로벌 결제에서 달러화 비중은 49.1%로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유로화(21%), 파운드화(6.5%), 위안화(4.7%)와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달러를 대체하려 하는 나라에는 100% 관세를, 이웃 나라인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25% 관세를 매기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는 "우리 달러를 안 쓰면 엄청난 불이익을 주겠다"는 강력한 경고다.

북미 경제권은 이미 이러한 관세 공포에 휘청이고 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매년 1조5000억 달러(약 2129조 원) 규모의 물건을 서로 사고팔고 있는데, 25%의 관세가 부과되면 모든 물건의 가격이 그만큼 오르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북미 전체의 공급망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영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CPKC 철도다. 이 철도는 캐나다의 밴쿠버 항구에서 시작해 미국 중부를 거쳐 멕시코의 자동차 공장지대까지 이어지는 2만 마일의 '경제 대동맥'이다. 280억 달러(약 39조 원)를 투자해 작년에 완공된 이 철도는 현재 하루 평균 24대의 열차를 운행하며 북미 3국의 핵심 산업거점을 연결하고 있다. 캐나다의 원자재가 미국을 거쳐 멕시코의 공장으로 이동하고, 완성된 제품이 다시 미국과 캐나다로 수송되는 북미 통합 물류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25% 관세가 부과되면 이 물류 네트워크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수송 비용 상승으로 물동량이 급감하면 CPKC 철도의 사업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처럼 보호무역으로 인한 북미 공급망의 균열은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역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달러를 더욱 선호하게 되고, 이는 다시 달러 강세를 부추겨 국제 무역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UBS의 폴 도노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패권의 진정한 위협은 미국 재정적자와 보호무역주의의 결합"이라고 지적한다. 2024년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전망치는 5.8%로, 이는 달러 신뢰도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준이다. 관세로 인한 무역 위축은 미국의 세수 기반을 약화하고 재정적자를 더욱 악화할 수 있어,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도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해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국제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1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연간 수출이 448억 달러 감소하고, 실질 GDP는 최대 0.67% 축소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한국 주력 산업이 직접적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KIEP 보고서는 반도체 산업이 연간 190억 달러, 자동차 산업이 157억 달러, 철강 산업이 51억 달러 수출 감소를 겪을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달러 강세로 인한 원자재 수입 부담 증가는 기업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수출 감소를 넘어 한국의 산업 구조 전반에 걸친 충격이 될 수 있다.

현재의 달러 강세는 시장 불안이 커질 때마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달러를 선호하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해진 달러는 국제 무역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결국 달러 중심 시스템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불만을 키워 장기적으로는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