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인하·관세 인상 '양날의 칼'...글로벌 공급망 재편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급진적 세제개혁과 관세정책을 동시에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현지시각) 딜로이트 택스(Deloitte Tax LLP)의 워싱턴 국세청(Washington National Tax Office) 조세정책그룹(Tax Policy Group)이 지난달 6일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의 조세정책 청사진을 상세히 보도했다.
트럼프의 세제개혁은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2017년 세금감면 및 일자리법(TCJA)의 영구화와 법인세 추가 인하다. 현행 21%인 법인세율을 15%까지 낮추되, 이를 미국 내 생산기업에만 차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른 하나는 해외생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다. 멕시코와 캐나다로부터의 수입품에 25%, 중국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기타 국가 수입품에는 10~2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특히 멕시코산 자동차에는 100% 관세를 매기는 등 극단적 보호무역 조치를 예고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미국 제조업 부활이라는 트럼프의 핵심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세제혜택과 관세장벽을 통해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미국산 자동차 구매 시 대출이자 전액 소득공제, 중소기업 설비투자 공제한도 확대 등 추가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주목할 부분은 트럼프가 대규모 세수 감소를 관세수입으로 상쇄하려 한다는 점이다. 의회예산국(CBO)은 TCJA 연장에만 4.6조 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했는데, Tax Foundation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가 제안한 관세 정책으로 향후 10년간 최대 2.7조 달러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는 GDP 0.2% 감소, 14만 개 이상의 일자리 손실, 소비자 물가 상승 등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수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관세로 인한 경제 위축이 다른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고, WTO 협정상 회원국 간 차별적 관세 부과가 금지되어 있어 다수 회원국의 제소와 보복 관세도 예상된다. 이에 따라 실제 세수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러한 정책이 실현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자동차, 전자제품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 내 생산 비중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건설 등을 통해 미국 내 연간 생산능력을 100만 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미국 정부로부터 64억 달러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아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향후 4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 혼다와 합작으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캘리포니아에 대규모 R&D 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기반 확대를 통해 관세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막대한 투자비용과 한국 내 생산·고용 감소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2025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세정책은 의회 협상 과정에서 일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했지만,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와 WTO 규정 위반 소지가 있는 차별적 관세정책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보호무역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여, 글로벌 교역질서의 근본적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도, 통상마찰 가능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