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에너지장관 지명자 크리스 라이트의 기후변화 회의론적 행보가 미국과 세계 기후정책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8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버티 에너지 CEO 출신인 라이트 지명자의 기후변화에 대한 이례적 시각과 그 파장을 심층 보도했다.
프래킹 업계의 주요 인사인 라이트는 화석연료 사용이 기온 상승의 원인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크게 평가절하하는 독특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기후변화가 식물 성장 촉진과 농업 생산성 향상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각은 기후과학계의 주류 견해와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미국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라이트의 견해가 주요 석유기업들의 입장과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옥시덴탈의 비키 홀럽 CEO는 기후변화를 "세계가 직면한 최대 위기"로 규정했으며, 엑손모빌의 대런 우즈 CEO는 파리기후협약 유지를 지지하고 있다. 대형 에너지 기업들은 이미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저탄소 사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정부와 기업 간의 기후정책 방향성 차이는 향후 에너지 산업 전반에 상당한 불확실성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큰 변화가 예상된다. 라이트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미 에너지부(DOE)를 이끌게 되는데, 그는 재생에너지 보조금 축소를 주장하며 지열과 원자력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터미널 허가 확대가 전망되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진영의 다른 핵심 인사들도 유사한 기조를 보이고 있다. 국방장관 지명자 피트 헤그세스는 기후과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으며, 예산 정책을 담당할 비벡 라마스와미도 기후변화 대응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2025년 이후 미국의 기후정책 변화는 국제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들이 합의한 개발도상국 기후변화 프로젝트 지원 확대 계획도 차질이 우려된다. 다만, 이미 글로벌 경제가 저탄소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어 이러한 흐름이 완전히 역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 변화는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해 전기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기후정책 후퇴로 이러한 투자의 경제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미국의 LNG 수출 확대 정책은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 최대 LNG 수입국 중 하나인 한국은 미국산 LNG 도입 확대로 에너지 수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글로벌 탈탄소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친환경 에너지 전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통상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미국의 정책 변화는 글로벌 기후대응의 새로운 도전요인이 될 전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미 세계 경제가 저탄소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기후변화 대응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단기적 정책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