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지필름 홀딩스가 한국 반도체 소재 공장을 확장하고 인공지능(AI) 칩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 후지필름은 한국 천안 공장에 신규 건물을 건설하고 반도체 웨이퍼 연마에 사용되는 CMP 슬러리 생산량을 30% 늘릴 계획이라고 13일(현지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 아시아가 보도했다.
이번 투자는 수십억 엔 규모로, 2027년 봄부터 양산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후지필름은 천안 공장에서 생산된 CMP 슬러리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공급할 예정이다.
후지필름의 이번 투자는 AI 칩 시장의 급성장에 따른 것이다. 특히, 생성형 AI의 발전과 함께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HBM은 여러 개의 DRAM 칩을 수직으로 연결하여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5년 HBM 시장 규모가 2024년 대비 70% 증가한 210억 달러(약 2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후지필름은 이러한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CMP 슬러리 생산량을 늘리고, 고성능 반도체 소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후지필름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대만, 일본 등 주요 반도체 생산거점에 CMP 슬러리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칩 재료 공장의 CMP 슬러리 생산량 증대를 위해 약 20억 엔(약 195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과 연계된 투자로 풀이된다.
후지필름은 전통적인 필름 사업에서 벗어나 헬스케어, 첨단 소재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소재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2027년 3월까지 이 분야에 1700억 엔(약 1조65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후지필름의 공격적인 투자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는 여전히 일본 등 해외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후지필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 반도체 소재 기업들은 AI 칩 시장의 급성장에 발맞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기술력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반도체 생태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