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금융 허브 위상이 사상 최대의 도전에 직면했다.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기업 이탈과 함께 뉴욕 중심의 글로벌 금융 질서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15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심층 보도를 통해 이러한 변화가 세계 금융시장의 근본적인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24년 9월 기준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시가총액은 약 40조 달러로, 전 세계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며 2020년(28조 달러) 대비 43% 성장했다. 반면 런던증권거래소(LSE)는 3.42조 달러 규모로, 글로벌 금융중심지 지수(GFCI)에서 여전히 2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케임브리지 이코노메트릭스의 분석에 따르면,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실질 국내총생산은 약 1400억 파운드(6%) 감소했으며, 전국적으로 약 1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런던 금융가의 공동화 현상도 심각해져 런던시에서만 29만개의 일자리가 감소했다.
2024년 LSE의 기업 이탈은 전례 없는 수준이다. 88개 기업이 상장을 폐지하거나 이전한 반면, 신규 상장은 18개에 그쳐 역대 최대 규모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시가총액 230억 파운드(약 292억 달러)의 애쉬테드를 포함해 2020년 이후 런던을 떠난 FTSE 100 기업들의 시장가치는 2800억 파운드(약 3,551억 달러)에 달한다.
2025년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금융시장의 독점적 지위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강화될 경우, 외국기업에 대한 상장 규제 강화, 자국 기업 우대 정책 등으로 글로벌 자본의 뉴욕 집중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한다.
아시아 금융시장도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일본거래소그룹(7조 달러), 상하이증권거래소(6.5조 달러), 홍콩증권거래소(4조 달러) 등 주요 거래소들이 규모를 키우고 있지만, 여전히 뉴욕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금융시장의 상황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코스피 시가총액은 2021년 6월 역대 최고치인 2700조원에서 2024년 10월 약 2300조원으로 14.8% 감소했다. 특히 2024년 들어 증시 부진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같은 기간 미국, 독일, 중국, 홍콩, 대만 증시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반면, 한국의 코스피는 9% 가까이 하락했고, 코스닥 지수는 20% 이상 하락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주식 가치가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과 맞물려 서울에서 뉴욕으로의 자본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금융시장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친화 정책 강화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야 한다. 또한 아시아 금융허브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역내 금융협력을 강화하고, 디지털 자산시장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2025년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뉴욕 중심의 일극체제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ESG 금융, 디지털 금융 혁신 등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고, 아시아 금융허브 간 협력을 강화한다면 균형 있는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