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17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세계화 후퇴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경제 질서의 근본적 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으로 이어지는 최근 세 행정부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해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산 타이어에 대한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했으며,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등을 통해 자국 산업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GDP는 2023년 8.1만 달러로 EU(6.1만 달러)와 중국(2.4만 달러)을 크게 앞서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 퇴조가 현실화될 경우 이러한 경제적 우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주요국들은 이미 새로운 경제 질서에 대비한 전략 수립에 나섰다. 중국은 '쌍순환' 전략을 통해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EU는 '전략적 자율성' 강화를 통해 미국과 중국 양국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경제 체제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해 공급망 강화에 나섰고, 아세안은 RCEP을 통해 역내 경제 통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이 독자적인 경제 블록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의 정치권은 제조업 일자리 감소를 세계화의 폐해로 지목하며 보호무역 강화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객관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제조업 고용 감소는 중국과의 무역 확대보다는 기술 혁신과 자동화의 영향이 더 크다. 실제로 미국 노동통계국(BLS) 자료를 보면, 미국의 제조업 고용은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으로 1979년 1940만 명에서 2023년 1300만 명으로 감소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미국이 세계화 퇴조를 주장하는 진정한 배경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지목한다.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과 첨단기술 육성을 통해 글로벌 경제 질서의 주도권 확보를 노리자,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대중국 경제 포위망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화 퇴조는 기후변화 대응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 80%, 리튬이온 배터리의 75%를 중국이 생산하고 있어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IEA는 청정에너지 기술의 글로벌 협력 없이는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수출의존도는 2023년 18.3%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대중 수출의존도는 19.7%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대중 수출의존도는 2022년 22.8%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는데, 이는 미·중 갈등 심화와 중국 경제 둔화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미·중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경우,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은 리스크 관리 강화와 함께 수출시장 다변화, 기술 경쟁력 제고 등 종합적인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세계화의 퇴조는 단기적으로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자극하고 글로벌 경제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도전은 혁신과 생산성 향상의 둔화, 기후변화 대응 지연, 국제 협력 약화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세계화의 부작용을 보완하면서도 그 혜택을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의 구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