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와의 가스 운송 계약 종료를 앞두고 에너지 안보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2024년 12월 31일 만료되는 EU 국가들과의 5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운송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것을 시사하면서, EU는 대체 공급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 매체인 ‘오일프라이스’가 보도했다.
헝가리 정부는 최근 EU 에너지 장관들과 공유한 문서를 통해 "지정학적 긴장, 공급망 차질,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로 인한 가격 변동성이 여전히 시급한 우려 사항"이라고 밝혔다. 현재 천연가스 가격은 팬데믹 시기의 최고치에서는 크게 하락했으나,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의 두 배를 웃돌고 있다.
우크라이나産 가스는 EU 전체 가스 수입량의 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는 우크라이나 가스 수입 중단 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국가들이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는 발 빠르게 대체 공급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슬로바키아의 경우, 국영 에너지 기업 SPP(Slovensky plynarensky priemysel)가 아제르바이잔 국영석유회사 쏘카(SOCAR)와의 계약을 통해 새로운 가스 공급망을 구축했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통한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 중단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로, 단기 파일럿 계약 체결 후 한 달 만에 실제 가스 공급이 시작됐다.
한편, 헝가리와 불가리아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들 국가는 가스프롬방크에 대한 EU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해결책을 마련해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공급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UAE의 ADNOC와 LNG 계약을 체결하는 등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독자적인 행보를 보인다.
튀르키예는 이러한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튀르키예는 EU에 대한 천연가스 수출을 대폭 확대할 의향을 표명했다. 주된 방안으로는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받은 천연가스를 EU에 재수출하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튀르키예는 자국 내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더 많은 가스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한다.
튀르키예의 이러한 제안은 EU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린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다만, 튀르키예 정부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앞서 EU 측의 확실한 수요 보장을 요구하고 있어, 실제 실현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EU의 이러한 움직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속화된 에너지 안보 강화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EU는 이미 회원국들에 러시아産 가스 공급 중단에 대비할 것을 지속 경고해 왔으며, 이번 우크라이나와의 계약 종료는 EU의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를 더욱 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EU의 이번 움직임이 단기적으로는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공급망 안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각국의 대체 공급원 확보 노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EU의 에너지 정책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띨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튀르키예의 역할 확대,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새로운 공급국과의 관계 강화, 그리고 회원국별 다른 대응 전략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