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5000만 달러(약 730억원) 이상을 운용하는 글로벌 자산가와 그 가족들은 전통적 투자에서 벗어나 위스키 배럴, 보트 정박지, 무선 스펙트럼 라이선스 등 파격적인 틈새시장으로 투자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배런스는 이러한 투자 패러다임 변화가 금융시장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고 지난 1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글로벌 자산가와 그 가족들의 투자 전략 변화는 전통적 투자 시장의 한계에서 비롯됐다. 글로벌 투자데이터 분석기업 아데파르(Addepar)에 따르면, 글로벌 자산가와 그 가족들은 최근 전체 자산의 상당 부분을 대체투자와 틈새 사모펀드에 배분하고 있다. 이는 대형 사모펀드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수익률 저하와 연 2~3%에 달하는 높은 수수료 부담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새로운 투자 영역의 가장 큰 특징은 주식·채권 등 전통 자산과의 낮은 상관관계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코르디예라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는 위스키 숙성이나 보트 정박지 같은 독특한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 중이다. 특히 위스키 투자는 숙성 기간에 따라 가치가 상승하며, 보트 정박지는 경기 변동과 무관한 안정적 임대 수입을 제공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투자 트렌드는 금융시장 전반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번스타인 프라이빗 웰스 매니지먼트의 디컨 터너 전무는 "글로벌 자산가와 그 가족들이 차별화된 자산군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대형 글로벌 자산가와 그 가족들은 불임 클리닉, 탄소 자산, 엔터테인먼트 로열티 등 전에 없던 투자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다만 이 분야는 최소 투자금액이 25만~수백만 달러에 달하고 투자 구조가 복잡해 일반 투자자의 접근이 제한적이다. 특히 이러한 투자는 전문성이 요구되고 투자 기간이 길며, 중도 환매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트럼프 취임 이후의 정책 변화도 주목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 기조가 이어질 경우 틈새시장 투자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세제 혜택 확대와 금융규제 완화가 예상되며, 이는 비전통적 투자 시장의 성장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산가치 평가의 어려움과 낮은 유동성으로 인한 시장 불안정성 확대 우려도 제기된다. 위스키나 예술품 같은 틈새 자산은 표준화된 가치 평가 기준이 없고, 급격한 시장 변동 시 매각이 어려울 수 있어 금융 시스템의 잠재적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금융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초부유층과 금융기관들도 새로운 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있으나, 관련 법규와 인프라 부족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상황이다. 특히 자본시장법상 사모펀드 운용 규제가 엄격하고, 틈새 자산에 대한 가치 평가 기준이 미비해 투자가 제한적이다. 또한 위스키나 예술품 같은 대체투자 자산을 전문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금융권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투자 수요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해외 틈새시장 투자 상품을 도입하거나 관련 펀드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규 정비, 전문 인력 양성,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 등 인프라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와 시장 안정성 측면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금융당국은 시장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틈새 자산에 대한 표준화된 가치 평가 기준 수립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도입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보 공시 강화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 등이 시급하다.
초부유층의 틈새시장 투자 확대는 투자 시장의 다양성을 높이고 새로운 수익 기회를 창출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향후 이러한 투자 트렌드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으로 틈새 자산의 가치 평가와 리스크 관리가 고도화되면서, 투자 방식도 더욱 정교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