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의 자금조달 규모가 사상 최대인 8조 달러를 돌파하며 새로운 금융시장 질서를 예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28일(현지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는 전년 대비 33% 급증한 수치로, 한국 기업들에게도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LSEG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회사채 발행과 레버리지 대출 규모는 7조93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하 기대감,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정책 불확실성 해소, 글로벌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수익 추구가 맞물린 결과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전략도 진화하고 있다. 애브비는 이뮤노젠과 세레벨 테라퓨틱스 인수를 위해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등급 채권을 발행했으며, 시스코, 보잉, 홈디포 등도 대규모 자금조달에 동참했다. 정책 방향성이 명확해지면서 기업들은 2025년 자금조달 계획까지 앞당기며 유리한 금융 조건을 선점하고 있다.
투자 심리도 호조다. BofA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투자등급 채권의 스프레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최저 수준인 0.77%포인트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회사채 펀드에는 사상 최대인 1700억 달러의 신규 자금이 유입됐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 낙관론에 우려를 표명한다. 웰스파고의 모린 오코너는 금리 상승 위험, 경기 둔화 가능성, 지정학적 리스크 등 하방위험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JP모건의 마크 베그네레스는 2025년에도 3% 내외의 경제성장이 예상되나, 기술·헬스케어 섹터의 대형 M&A로 인한 추가 부채 발행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20~21년 팬데믹 시기에 발행된 회사채의 만기 도래다. 당시 1-2% 대 초저금리로 발행된 약 2조 달러 규모의 회사채가 2025~26년 사이 만기를 맞게 된다. 현재 5% 이상인 금리 환경에서 재융자가 이뤄질 경우, 기업들의 이자비용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의 차입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가운데, 기존 저금리 회사채의 만기 도래와 높아진 금리로 인한 재융자 부담이 겹치면서 향후 기업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기술·헬스케어 섹터의 대형 M&A 추진으로 추가 부채 발행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기업들의 부채 부담은 더 가중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차입은 긍정적 신호로도 해석된다. 미·중 무역갈등과 보호무역주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활발한 자금조달은 투자 확대와 사업 확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반영한다. 특히 기술·헬스케어 분야의 대규모 투자는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애브비의 150억 달러 규모 채권 발행은 신약 개발과 바이오 사업 확장을 위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로벌 저금리 기조를 활용한 선제적 자금조달이 필요하지만, 환리스크와 금리 변동성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요구된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확대 움직임은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협력과 경쟁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의 기록적인 기업 차입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과제이지만, 동시에 이는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경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주시하며 기회 포착과 리스크 관리의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