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의 전략적 결단이 세계 경제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글로벌타임즈(12월 9일)와 성도망(12월 31일)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부터 38개국에 대한 무비자 정책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이 정책이 단순한 관광 진흥을 넘어 체제 생존과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위한 종합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진핑 정부의 이번 정책 전환은 세 가지 절박한 현실에 직면한 결과다. 첫째, 중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15~24세 청년 실업률이 21.3%까지 치솟았고, 헝다그룹을 비롯한 주요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디폴트 위험이 현실화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붕괴 직전이다. 여기에 지방정부 부채는 92조 위안(약 1경8000조 원)을 넘어서며 중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광산업 활성화는 서비스 부문 일자리 창출과 소비 진작을 위한 마지막 카드로 부상했다.
둘째, 트럼프의 재등장은 중국에 심각한 도전 요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이미 대선 공약으로 중국 기업에 대한 전면적 투자 제한과 관세 인상을 예고했다. 이는 단순한 위협이 아닌 실존적 위험이며, 중국은 이에 대비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외교 축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38개 무비자 대상국 중 유럽 국가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이러한 전략적 고려를 반영한다.
셋째,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실추된 국제적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절박함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은 중국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2022년 GDP 성장률이 3%대로 추락한 것은 물론,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입지가 크게 약화됐다. 무비자 정책은 이러한 신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과감한 결단으로 해석된다.
선별적 개방은 이번 정책의 특징이다. 38개 무비자 대상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EU 주요국과 일본 등 아시아 선진국, 그리고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등 신흥 유럽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에 대응하는 새로운 협력 네트워크 구축 시도로 해석된다.
정책의 효과는 가시화되고 있다. 2023년 3분기 외국인 입국자는 818.6만 명으로 전년 대비 48.8% 증가했으며, 무비자 입국자는 488.5만 명으로 78.6% 증가했다. 특히 쿤밍 공항의 경우 외국인 입국자가 전년 대비 1,158% 증가하는 등 지역별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질적 관광'으로의 전환도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은 저가 단체관광에서 탈피해 문화유산 탐방, 의료관광, MICE 산업 등 고부가가치 관광을 육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화 획득을 넘어 중국의 소프트파워 강화를 겨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홍콩도 이러한 중국의 전략 변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청사진 2.0'을 통해 2029년까지 관광 부가가치를 1200억 홍콩달러로 증대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판다 관광, 섬 관광, 경마 관광 등 특색 있는 상품 개발은 중국 본토와의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 현지 반응은 신중하면서도 낙관적이다. 업계는 2025년에야 정책의 실질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유럽 관광객들의 장기 예약 관행을 고려할 때, 정책 효과의 본격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 관광 교류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씨트립 데이터에 따르면, 무비자 정책 시행 후 한국 관광객의 중국 여행 예약이 전년 동기 대비 150% 이상 증가했다. 반면 2024년 1~9월 방한 중국인 관광객은 361만 명에 그쳐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러한 비대칭적 회복세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반영한다. 자국민의 해외 관광은 통제하면서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한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려는 것이다.
중국의 무비자 정책은 심화되는 경제 위기와 국제적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개방 확대라는 상충된 목표 사이에서 중국이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되,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면밀히 파악하며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