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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BofA, '넷제로' 동맹 탈퇴…美 금융가, 기후변화 대응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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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BofA, '넷제로' 동맹 탈퇴…美 금융가, 기후변화 대응 '역주행'

美 공화당 압박에 "에너지 안보 우선"…탈탄소 후퇴 우려
신흥국 투자 확대, '개별 전략'으로 선회 시사

미국 투자은행인 시티 본사에서 나오는 근로자.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투자은행인 시티 본사에서 나오는 근로자. 사진=로이터

미국 금융가에 '기후변화 대응 역주행' 조짐이 뚜렷하다. 세계 최대 은행 기후 동맹인 '넷제로 뱅킹 얼라이언스(NZBA)'에서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가 탈퇴를 선언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와 로이터통신이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웰스파고와 골드만삭스도 동맹을 이탈하면서, 미국 대형 금융사들의 이탈 행렬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NZBA는 2021년 씨티그룹 주도로 출범한 유엔 기후 서약으로, 온실가스 배출 산업에 대한 투자와 대출을 제한해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최근 미국 공화당의 정치적 공세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그리고 경기 침체 우려 속에 주요 은행들이 기후 목표보다 단기적인 수익성 확보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씨티그룹은 "동맹에서 탈퇴하지만, 저탄소 경제 전환을 위해 고객과의 협력은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고객의 기후 목표 달성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행 방안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NZBA 탈퇴는 미국 금융사들이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기후 목표와 에너지 안보, 그리고 수익성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넷제로' 균열…美 금융권 홀로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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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BA는 2050년까지 대출 및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탄소 배출량을 '순제로'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1년 씨티그룹 주도로 출범 당시 금융권의 지속 가능성 전략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최근 공화당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공화당은 ESG 경영을 '위선 자본주의(woke capitalism)'라 비난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보다 주주 이익 극대화를 강조한다. 이러한 정치적 역풍 속에서 금융사들은 장기 기후 목표보다 단기 수익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공화당은 석유·가스 산업에 대한 대출 축소 정책에 지속해서 반대해 왔다. 공화당 의원들은 화석 연료 산업의 경제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금융사의 자금 지원 중단을 경계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기후 목표와 에너지 안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요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 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공화당이 주도하는 11개 주는 블랙록, 스테이트스트리트, 뱅가드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넷제로 목표를 추구하며 석탄 공급을 제한해 에너지 가격 상승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금융권의 ESG 경영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탈퇴 이후에도 기후 목표에 대한 의지를 밝혔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제시하지 않았다. 씨티는 "저탄소 경제 전환을 위해 고객과 계속 협력하며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동맹의 일괄적인 기후 목표 달성이 아닌, 개별 은행 차원의 맞춤형 접근 방식을 택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NZBA의 엄격한 규제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기준과 속도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역시 "고객의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하겠다"며 기후 금융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나 투자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기후 리더십의 향방은


씨티와 BofA의 탈퇴는 기후 변화 대응과 정치적 현실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금융사들이 기후 목표를 수정하거나 에너지 안보를 우선시하는 전략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 금융권이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리더십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의 탈퇴는 신흥 시장에 대한 자본 투자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씨티그룹은 탈퇴 발표와 함께 "신흥 시장에 자본을 제공해 해당 국가들의 기후 프로젝트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동맹의 탈퇴 압력에서 벗어나, 개도국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 등에 투자를 확대하여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태양광 발전소 건설이나, 아프리카 국가들의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선진국의 책임 회피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국 대형 금융사들의 탈퇴는 국제 금융 시장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이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고,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탄소 중립 목표를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 금융권의 이탈은 국제 기후 협약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미국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요국으로서,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미국 금융권의 이탈은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탈퇴 움직임이 금융권의 기후 목표를 완전히 무력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한다. 오히려 금융사들이 개별적으로 기후 목표를 설정하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획일적인 규제보다는 개별 금융사의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접근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씨티와 BofA의 결정은 미국 금융사들이 단순한 기후 공약에서 벗어나 현실적이고 유연한 기후 전략을 모색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 변화가 '그린워싱(기업이 이윤을 목적으로 친환경 특성을 허위 과장해 광고·홍보하는 등의 행위)'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탄소 배출 감축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 금융권이 단기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 안목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지, 전 세계가 그들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