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상징이었던 레드와인이 소비 패턴의 급격한 변화로 존립 위기를 맞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 레드와인 소비가 1970년대 이후 90%나 감소했다고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는 한국 전통주 산업이 경험하는 젊은 세대의 선호도 하락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통 주류산업의 생존 전략을 재고하는 현상이 되고 있다.
글로벌 와인시장은 4635억 달러 규모로, 2033년까지 연평균 5.5% 성장해 7491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러한 성장은 아시아와 신흥시장의 와인 소비 증가, 프리미엄 와인 수요 확대, 그리고 화이트와인과 로제와인 같은 새로운 카테고리의 성장에 기인한다.
반면, 프랑스 와인협회(CIVB) 통계는 자국 내 소비 감소라는 충격적 현실을 말한다. Z세대의 와인 구매량은 밀레니얼 세대의 절반 수준이며, 세대별 소비량은 할아버지 세대 연간 300리터, 아버지 세대 180리터, 현재 젊은 세대 30리터로 급격히 줄었다.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취향이 크게 바뀌고 있다. 화이트와인과 로제와인이 전체 와인 소비량의 절반을 넘어섰으며, 2021년 기준 화이트와인 비중은 43%로 21세기 초보다 3%포인트 늘었다. 젊은 소비자들은 가볍고 신선한 음료를 선호하며, 기후변화로 더워진 날씨도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했다.
특히, 신흥시장 성장이 주목된다. 인도, 브라질, 동남아시아 등에서 중산층이 늘면서 와인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 시장에서는 레드와인보다 화이트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중국 시장의 수요는 감소했다. 지난해 프랑스 와인 수출량은 전년 대비 10% 감소했으며, 300만 헥토리터의 재고가 쌓였다. 중국 소비자들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와인을 더 선호하게 됐으며, 중국 자체 와인산업의 성장도 프랑스 와인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한국의 와인 시장도 최근 조정기를 맞고 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와인 수입액은 5억6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2.9% 감소했으며, 수입량도 5650만kg으로 20.4% 줄었다. 다만 주목할 점은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와인 소비자의 63%를 차지하며, 여성 소비자의 비중도 48%까지 늘어나는 등 소비 주체가 뚜렷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위기에 프랑스 정부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정부는 2024년부터 2029년까지 1억2000만 유로를 투입해 최대 3만 헥타르의 포도밭을 정리하는 계획을 시행한다. 이는 축구장 4만2000개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는 포도나무를 제거하는 농가에 헥타르당 최대 4000유로의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샤토 모비농 등 일부 와이너리는 2018년부터 화이트와인 생산을 시작했고, 오렌지와인과 저알코올 와인도 출시하는 등 젊은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에 맞춰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일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유기농 와인의 수출이 전년 대비 15% 증가했으며, 저알코올 와인의 판매도 늘고 있다. 특히 한국,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시장에서 프랑스산 화이트와인과 로제와인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프랑스 와인산업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면서, 향후 5년 내 산업 지형도가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
프랑스 레드와인 산업의 위기는 전통산업이 마주한 시대적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산업 위기를 넘어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다. 그러나 신흥시장 개척과 제품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생산방식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면 프랑스 와인산업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통산업의 혁신과 적응이라는 측면에서 글로벌 산업계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