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밀라노·방글라데시 다카의 그늘
밀라노 소재 하청업체 AZ 오퍼레이션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4시간을 근무하면서도 기본적인 휴식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현지 노동단체 '라보로 디그니토소'가 2023년 벌인 조사에 따르면, 작업장 대부분이 환기 시설도 부족하고 안전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한 노동자는 "10명이 방 하나에서 생활한다. 화장실도 부족하고 샤워 시설도 없다.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항의도 못 한다"고 증언했다. 이들 대부분은 적절한 노동 허가 없이 일하고 있어, 임금 체불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지 노동단체들은 이러한 상황이 수년간 지속돼 왔다고 지적한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작업장 내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았고, 마스크 같은 최소한 보호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열악한 노동여건이 폭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이미 지난해 1월 이탈리아의 중국인 공장에서 근로자들을 착취한 혐의로 디올과 아르마니가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한 의류 공장에서는 더욱 열악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 의류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95달러 수준이다. 이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현지 노동조합 관계자는 "에어컨 없는 작업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 화장실 가는 횟수까지 감시받는다"면서 "14세 미만 아동 노동자도 여전히 발견된다"고 전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안전 문제다. 2013년 라나플라자 참사 이후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의 안전 기준이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공장들이 기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한다. 화재 대피로가 막혀있거나, 전기 배선이 노출된 채로 방치되는 등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 디올의 책임과 윤리적 소비 중요하다
디올은 공식 성명을 통해 "모든 하청업체에 노동법 준수를 요구하고 있으며, 분기별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감사가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밀라노 노동법 전문가 마르코 비앙키는 "하청 구조를 통한 책임 회피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면서"럭셔리 브랜드들은 공급망 전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하청업체 선정 과정에서부터 노동 환경에 대한 철저한 실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패션 산업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윤리경영 수준을 확인하고 구매를 결정하는 '의식있는 소비'가 늘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윤리적 패션'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의 품질이나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 제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 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현재 유럽연합(EU)은 기업들의 공급망 실사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노동자 인권 보호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대기업들은 자사 공급망 전반에 걸쳐 인권과 환경 기준 준수 여부를 정기 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