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부의 방관이 문제 키워
이탈리아에서는 디오르의 하청업체 'AZ 오퍼레이션스'가 불법체류 노동자를 고용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임금을 체불했다. 밀라노 검찰은 이를 '현대판 노예제'로 규정했다. 한 노동운동가는 "디오르는 하청업체와 맺은 계약 해지로 문제를 덮으려 하지만,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칩 메이커 인텔은 공급망 전체의 노동 환경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50개 공급업체에 2차 공급업체 3곳과 협력하도록 요구한 결과, 2차 공급업체들이 채용 정책을 변경하고 노동자들에게 120만 달러의 수수료를 반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각국 정부의 역할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이다. 노동력 착취 등이 빈발하는 브라질, 이탈리아, 방글라데시 등의 정부는 노동법을 강화했다지만 집행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보면 방글라데시 정부의 대응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일부 하청 공장의 아동노동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이탈리아는 노동 착취 적발 후 법적 처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 유명한 나라다. 밀라노 검찰은 "노동 착취는 사회 전체의 책임이며, 정부의 방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변화를 만든다
소비자는 기업 변화를 이끄는 핵심 주체인 만큼 이제 소비자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윤리적 기업' 인증을 통해 기업의 노동 환경을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비콥(B Corp) 인증'은 좋은 예다. 비콥 인증은 전 세계 37개국에서 인정받는 사회·환경 성과 평가 시스템이다. 또 국제공정무역기구는 공정무역 인증을 제공한다. 기업윤리연구소 에티스피어(Ethisphere) 재단이 주관하는 '세계 최고 윤리기업' 목록은 5개 범주 240개 항목을 평가해 윤리적 기업을 선정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행은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현실에서는 명품과 전기차에 대한 소비 욕구가 윤리 소비보다 앞서고 있다. 노동 인권 전문가들은 "진정한 럭셔리는 생산 과정의 노동자 존중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공급망 전반에 대한 철저한 실사와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공급망 근로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독립 감시조직인 일렉트로닉스워치(Electronics Watch)의 사례처럼 노동자 중심의 모니터링을 도입하고, 고충처리 체계를 개선하며, 하청업체와 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각국 정부는 법 집행을 강화하고, 소비자는 윤리적 소비로 기업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기업은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벗어나 생산 활동의 이익을 공정하게 재분배해야 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