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LNG·국방물자 수입확대 제안...철강 보복관세 카드도 재검토
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위협에 대응해 통상정책 재편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각) EU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피하면서도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확대부터 보복관세까지 다양한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EU와 미국 간 양방향 무역 및 해외 계열사 매출은 8조7000억 달러(약 1경2624조 원)을 기록했다. 유로스타트(Eurostat) 통계를 보면 2023년 미국은 3575억9000만 달러(518조8631억 원) 규모로 EU 최대 교역국 지위를 차지했다.
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의 관세 압박을 피하기 위해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국방물자 구매 확대, 우크라이나 지원 분담금 증액 등을 제안했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19일 브뤼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차기 행정부와 상호 이익이 되는 결과를 위해 협력하겠다"면서도 "필요하다면 우리 산업과 기업을 방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자 버번위스키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등 미국의 정치적 요충지 품목에 보복 관세로 맞섰다. WSJ는 "EU가 이번에도 유사한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EU는 최근 역외국의 무역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를 도입했다. WSJ에 따르면 EU는 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공공조달 참여를 제한하고, 강제 기술이전을 요구하는 국가의 기업에 대해 시장접근을 제한할 수 있게 됐다. 또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조사 권한도 강화했다.
한편, EU는 트럼프의 관세위협과 함께 중국발 이중 압박에도 직면했다. EU는 지난해 12월 수개월간의 조사 끝에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3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달 초 파리 기자회견에서 "이 수준의 관세로는 유럽 산업을 보호하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U는 미국과의 긴장 속에서도 자유무역 기조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EU는 지난해 12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4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으며, 멕시코와도 무역장벽 철폐를 위한 개정 협상을 17일 체결했다.
EU의 27개 회원국은 대응 방향을 두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제조업 강국은 산업 보호를 위한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반면, 네덜란드 등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협상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고 있다. 이들은 협상을 통한 해결, 보복 관세, 자국 산업 보호 등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놓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마로시 세프초비치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이달 초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방문에서 "WTO가 오늘날의 무역 시스템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지타운대학의 제니퍼 힐먼 무역 전문가는 19일 WSJ와의 인터뷰에서 "EU와 다른 국가들이 WTO 규범을 최대한 준수하며 사태 악화를 막으려 할 것"이라며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는 EU 경제가 규칙 기반 무역체제 붕괴로 미국의 관세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오스트리아 경제연구소의 가브리엘 펠버마이어 소장은 WSJ에 "EU가 세계 무역 시스템을 지키지 못하면 다른 많은 나라와의 교역에서도 손실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