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군사력 사용도 배제 않겠다" 발언에 파나마, UN 제소
미국과 파나마가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두고 벌이는 외교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 반환을 요구하고 군사력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운하를 다시 탈환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군사력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운하를 통제하고 있으며 미국 선박에 과다 요금을 부과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파나마 정부는 트럼프의 발언이 영토 보전과 국가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을 금지한 유엔 헌장을 위반했다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했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23일 기자회견에서 “파나마 운하와 인접 지역은 파나마의 영토이며, 어떤 경우에도 반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나마 외교부는 24일 성명을 통해 "운하 통행료는 선박의 크기와 화물 종류에 따라 결정되며, 국적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홍콩 기업 허치슨 왐포아가 양측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지만, 수로 통제권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파나마 운하 당국은 공식 자료를 통해 미 해군이 지난 26년간 지불한 통행료가 254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는 연간 100만 달러도 되지 않는 금액이며, 미 국방부의 연간 예산 9000억 달러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82km 길이의 전략적 수로로, 1914년 미국이 건설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977년 운하 반환 조약에 서명했고, 1999년 파나마로 이양됐다. 파나마는 2015년 50억 달러를 투자해 운하를 확장했으며, 현재 연간 약 5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파나마 운하청(ACP) 자료에 따르면, 현재 연간 1만 4000척 이상의 선박이 이 수로를 통과하고 있다. 파나마 대사관은 "운하가 글로벌 해상 물류의 핵심 통로로서 세계 무역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는 "파나마 운하가 미국의 기술력과 경제력을 상징하는 프로젝트였으며, 미국의 중남미 정책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WSJ는 이번 갈등이 1903년 파나마의 콜롬비아 독립 지원부터 1989년 미군 침공까지 이어진 미국의 제국주의 역사를 상기시킨다고 지적했다.
특히 1964년에는 운하 지대에서 파나마 국기 게양을 시도한 학생들과 미군의 충돌로 22명의 파나마인이 사망한 비극이 벌어졌다. 당시 파나마는 사건 직후 미국과 외교 관계를 일시 단절했다.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은 이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운하 조약 협상을 시작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