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유 수출 자유화 10년, 쿠싱-휴스턴 거래허브 성장에 힘입어 국제 영향력 확대

2023년 WTI가 유럽의 기준유종인 브렌트유 선물계약의 인도가능 유종으로 추가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WTI 관련 선물계약의 미결제약정은 8억 배럴에 육박해 브렌트유를 제외한 다른 모든 원유 선물계약을 합친 규모를 웃돌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쿠싱(Cushing)은 1980년대부터 원유의 저장과 거래가 이뤄진 북미 최대의 원유 물류기지다. 이곳은 지난 15년간 저장탱크와 송유관 연결망이 크게 확충되면서 세계 최대 원유허브로 성장했다. 2024년 기준 쿠싱의 원유저장 용량은 9800만 배럴에 달하며, 캐나다 서부와 로키산맥, 바켄, 퍼미안 분지 등 북미 주요 원유 생산지에서 20개 이상 송유관이 연결돼 있다.
북미 원유 생산량은 셰일오일(頁巖油·셰일층에서 채굴하는 원유) 개발 확대에 힘입어 2008년 하루 800만 배럴에서 2015년 1300만 배럴, 2024년에는 1800만 배럴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송유관 시스템이 최대 용량에 도달하면서 원유 운송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이뤄졌다.
2015년 미국의 40년 원유 수출 금지가 해제되면서 텍사스주 휴스턴은 정유시설 밀집지이자 수출 관문으로서 새로운 거래허브로 부상했다. 특히 마젤란의 이스트 휴스턴 터미널(MEH)은 퍼미안 분지의 원유 생산지 및 정제시설과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장조사기관 아르거스는 2015년부터 'WTI 휴스턴' 가격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멕시코만 연안의 저유황 경질유 거래기준이 되고 있다.
2023년에는 미국산 WTI 원유가 유럽의 기준유종(국제 원유시장에서 다른 원유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대표적 원유)인 브렌트유 선물계약의 인도가능 유종으로 추가됐다. 가격평가기관 아르거스와 플래츠의 분석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시장에서 WTI 미들랜드 원유는 추가 이후 거래일 기준으로 절반 이상의 기간에서 가격 결정 기준유종이 됐다.
이는 브렌트유 선물계약 거래에서 WTI 미들랜드 원유가 다른 인도가능 유종들보다 더 많이 선택되어 실제 거래가격 형성을 주도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 원유시장에서 미국산 WTI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됐음을 보여준다.
2024년 NYMEX WTI 선물은 3억 1700만 배럴의 실물인도 기록을 세웠으며, 중동 오만 선물계약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2025년 현재 WTI 관련 차액결제 선물계약(실제 원유를 주고받지 않고 만기일에 계약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만 정산하는 금융상품)의 미결제약정(청산되지 않은 계약)은 8억 배럴에 육박하며, 이는 브렌트유를 제외한 다른 모든 원유 선물계약을 합친 것보다 많은 규모다.
WTI와 브렌트유의 가격차이는 북미 셰일오일 생산 급증으로 2015년 이전 최대 배럴당 25달러까지 벌어졌으나, 수출 자유화와 인프라 확충으로 2024년에는 3~5달러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는 미국 원유의 국제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음을 보여준다.
2024년 미국 외 지역의 WTI 거래량은 전년 대비 29%에서 37%로 증가했으며, WTI 선물과 휴스턴 선물의 신규 참가자 대부분이 해외에서 유입됐다. 특히 유럽 정유사들이 WTI 기반 원유 가격책정 방식을 채택하면서 WTI의 국제적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