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넘는 전쟁에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 '협상 카드'로 부상
전쟁 속 희토류 쟁탈전…미국‧중국‧러시아 삼각 경쟁 구도 심화
전쟁 속 희토류 쟁탈전…미국‧중국‧러시아 삼각 경쟁 구도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000일을 넘기며 장기화되는 가운데, '유럽의 곡창'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막대한 광물 자원이 새로운 전략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이 먼저 움직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의 조건으로 5000억 달러(약 720조 원) 규모의 희토류 및 전략 광물을 요구했다고 15일(현지시각)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우리는 대가 없이 우크라이나를 방어하는 데 수천억 달러를 쓸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 측이 이에 "근본적으로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5일 AP통신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제안한 '우크라이나 희토류 50% 지분 양도' 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는 "이 제안이 미국의 이익만 반영하고 있다"며 협상에 참여한 장관들에게 "서명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12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키이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우크라이나 희토류와 미국의 안보 보장을 교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의 군사 지원 대가로 희토류를 요구했으며 미국의 안보 보장 약속은 없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유럽군을 창설할 때가 왔다"며 미국이 아닌 유럽 주요국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지켜줄 것을 호소했다. 향후 며칠 안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릴 것으로 알려진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자 회동과 관련해서도 우크라이나의 참석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젤렌스키는 작년 9월 뉴욕에서 트럼프와 회담을 갖고, 전쟁 이후 미국 기업들의 우크라이나 광물 채굴 및 재건 사업 참여 기회를 논의한 바 있다.
트럼프의 이번 제안은 중국 견제 의도가 뚜렷하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시장을 지배하는 주요 세력으로, 2024년 수출이 6% 증가하며 시장 내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희토류는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미사일 시스템, 레이저, 원자력 발전, 컴퓨터 디스크 등 첨단 기술 제품에 필수적인 17가지 금속을 포함한다.
우크라이나 환경보호천연자원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분류한 50가지 광물 중 22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국립지질연구소는 우크라이나의 총 희토류 매장량을 약 26억 톤으로 추산하며, TV와 조명에 사용되는 란타넘(La)과 세륨(Ce), 풍력 터빈과 전기차 배터리에 필수적인 네오디뮴(Nd), 원자력과 레이저 산업에 쓰이는 어븀(Er)과 이트륨(Y)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과 흑연이다. 리튬 매장량은 약 50만 톤으로, 키로보흐라드 지역의 도브라 광산이 가장 유망하다. 흑연은 전 세계 매장량의 20%를 차지하며, 우크라이나는 유럽 최대의 우라늄 보유국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건설(We Build Ukraine)과 국가전략연구소의 2024년 상반기 데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금속 자원의 약 40%가 현재 러시아 점령 하에 있다. 특히, 1월에는 도네츠크 지역 포크롭스크 시 외곽의 유일한 코크스 탄광이 폐쇄되었으며, 러시아는 도네츠크와 자포로지아 지역의 두 개 리튬 매장지도 점령한 상태다.
올렉시 소볼레프 우크라이나 경제부 차관은 올 1월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방 동맹국들과 중요 소재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33년까지 이 부문의 투자 가치를 120억~150억 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높은 수준의 숙련 노동력과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 발달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개발에는 여러 난관이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에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희토류 광산이 아직 없다"고 지적하며, 비효율적인 규제 절차, 지질학적 데이터 접근의 어려움, 토지 구획 획득의 복잡성 등을 주요 장애물로 꼽는다.
트럼프는 다음 주 젤렌스키와의 회동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푸틴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 차관 세르게이 랴브코프는 "트럼프가 푸틴의 근본적인 목표를 훼손한다면 평화 협정 도달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