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금융망이 숨긴 펜타닐 자금 1082조…美, CIA 투입 '총력전'

"프루티 페블스 시리얼 상자와 생일 선물 포장지 속에서 현금 다발이 쏟아졌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적발한 중국발 자금세탁의 한 장면이다. 펜타닐 판매로 얻은 수익금이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다시 흘러 들어가는 복잡한 과정이 미국 사법당국과 법원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공개한 수사 기록에 따르면, 중국 금융 브로커들이 멕시코의 시날로아 카르텔과 협력해 미국 내 마약 자금을 세탁하는 구조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고리로 한 펜타닐 밀매 차단을 위해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 국경 강화에 나선 배경을 보여준다.


"파란색 마세라티 뒷좌석을 확인하라." 2022년 10월 어느 날 아침, 캘리포니아 샌가브리엘의 글로벌 프레시 마켓 주차장. DEA 특별수사팀이 도청한 수상한 통화 내용이다. 잠시 후 한 마약 밀매 용의자가 흰색 픽업트럭을 타고 나타나 마세라티에 검은 가방을 전달했다. 가방 속에는 30만 달러(약 4억3000만원)가 들어있었다.
DEA 수사로 드러난 자금세탁 과정은 정교했다. 미국 내 펜타닐 판매 대금을 중국계 브로커가 수거한 뒤, 중국 메신저 앱 위챗(WeChat)으로 이 달러화를 중국 내 구매자에게 광고한다. 중국의 자본 통제로 해외 송금이 제한된 중국인들은 부동산 구매, 유학비 납부, 도박 자금 등에 쓸 달러가 필요했다. 이들이 브로커의 중국 계좌로 위안화를 이체하면, 미국에서 달러 현금을 받을 수 있었다.

브로커는 두 가지 방식으로 카르텔에 자금을 전달했다. 위안화를 멕시코 페소로 직접 환전하거나, 중국 상품을 구매해 멕시코로 수출한 뒤 판매 수익을 전달했다. 주목할 점은 수수료다. "중국 브로커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콜롬비아 중개인들이 7~10%를 요구했다." 전직 DEA 요원이자 현재 나르델로 앤 컴퍼니의 이사인 크리스 어벤의 설명이다. 중국 브로커들은 1~2%만 받았다.


DEA는 이른바 '포춘 러너 작전'을 통해 수천 시간의 현장 감시를 벌였다. 수사망에 걸린 차량들에서는 시리얼 상자와 선물 포장지에 숨긴 현금이 잇따라 발견됐다. 24명이 기소됐고, 이들은 시날로아 카르텔을 위해 5000만 달러(약 720억원) 이상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중국 국적자 2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한 명은 6200만 달러(약 894억원) 규모의 자금세탁에 연루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마약 거래 직후 즉시 카르텔에 돈을 이체해주는 '신용 거래' 방식으로 경쟁자들과 차별화했다고 법원은 밝혔다.


"전 세계 마약 판매 규모가 연간 5000억7500만 달러(약 721조~1082조원)에 달하며, 상당 부분이 중국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세탁된다." 미 하원 중국공산당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전직 DEA 관계자의 증언이다. DEA 작전국장 대행 자로드 포르게트는 "펜타닐 위기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결국 중국으로 끝난다"고 단언했다.

DEA는 샌가브리엘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중국인 금융 브로커 사이 장(Sai Zhang)의 네트워크를 추적 중이다. 장은 시날로아 카르텔과 협력해 자금을 세탁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현재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 당국도 지난해 6월 이 네트워크와 연계된 한 용의자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DEA에 따르면 지난해 압수한 펜타닐만으로도 미국 전체 인구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양이었다. 5500만 알의 알약과 약 8000파운드의 가루가 적발됐다. 이번 보도로 드러난 중국 금융 브로커들의 불법 자금세탁이 미국의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부상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미·중 양국의 긴밀한 협력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닐 위기 종식을 위해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펜타닐 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 내부에 있다"며 "비난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전직 미 법무부 돈세탁 단속 책임자 크레이그 팀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돈세탁 방식이 바로 이 중국 금융 브로커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마약 카르텔과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7일 CIA가 멕시코 지방정부와 정보 공유, 현지 마약 단속부대 훈련, 기타 비밀활동 수행 등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 수행 계획을 세우고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존 랫클리프 CIA 국장은 그동안 CIA가 주력해온 대중국 첩보활동, 중동·아프리카에서의 대테러 작전,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마약 대책 임무로 자원을 전환할 계획이라고 WP는 전했다. 이는 펜타닐 위기의 심각성을 반영한 전략적 결정으로 풀이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