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사스·로옴, 산업기계·전기차 침체로 실적 회복 지연

산업기계와 전기자동차(EV)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반도체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인프라 투자 감소, 현지 반도체 기업의 성장, 미·중 갈등 심화 등이 겹치며 실적 회복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닛케이 테크 포사이트는 지난 19일(현지시각)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와 로옴 등 일본 파워반도체 제조업체들의 실적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의 시바타 히데토시 최고경영자(CEO)는 "자동차와 산업기기 등의 최종 수요 회복이 늦어지고 있으며, 파워반도체 조정 국면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기기와 자동차용 마이크로컨트롤러(MCU)와 파워반도체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르네사스는 지난해 2분기부터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기 시작해 4분기까지 하락세가 지속됐다. 시바타 CEO는 "2024년은 재고 조정의 해가 될 것"이라며 "2025년에도 큰 폭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로옴의 상황도 비슷하다. 마츠모토 이사오 CEO는 "주력인 파워반도체 수주가 2023년에 비해 줄고 있다. 특히 산업기기용 약세가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로옴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0% 감소했다.
IHS마킷에 따르면 르네사스는 차량용 MCU 시장에서 30%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도 15% 점유율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르네사스는 2025년부터 탄화규소(SiC) 전력반도체 자체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프랑스 리서치 기업 욜(Yole)에 따르면, 로옴은 2021년 SiC 글로벌 시장에서 4위를 차지했다.
중국 시장의 변화는 두 기업의 실적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인프라 투자 감소로 산업기기 시장 전체가 침체된 가운데, 현지 기업들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르네사스는 "중국 현지 업체가 파워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경계했으며, 로옴은 "중국 기업이 저가격 파워반도체를 시장에 투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도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부상했다. 르네사스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로 일부 중국 고객이 일본 제품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장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우려된다는 분석이다.
SMBC닛코증권의 사카이 야스오 애널리스트는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일본 기업의 실적 회복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