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물질 상태' 발견 발표에 과학계 "결정적 증거 부족" 지적

신약 개발과 데이터 보안을 혁신할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는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최신 기술 돌파 선언을 두고 물리학계에서 검증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 19일(현지시각)부터 21일까지 연속 보도했다.
WSJ 보도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19일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과 함께 양자컴퓨팅의 핵심 기술인 '위상 초전도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위상 초전도체는 고체, 액체, 기체와는 다른 새로운 물질 상태로, 더 안정적인 양자 계산을 가능하게 한다.
이 회사가 개발한 '마조라나 1' 칩은 단일 칩에서 최대 100만 개의 양자비트(큐비트)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현재 가장 발전된 양자컴퓨터가 수천 개의 큐비트를 보유한 것과 비교할 때 획기적인 발전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는 지난 1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당신의 손바닥에 쏙 들어갈 수 있는 칩이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컴퓨터를 합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발표 이후 양자컴퓨팅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디웨이브 퀀텀(QBTS)은 지난 20일 정오 기준 7% 이상 상승했고, 리게티 컴퓨팅(RGTI)은 약 4% 올랐다.
그러나 해당 네이처 논문을 검토한 과학자들은 이 회사의 주장이 결정적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서 열린 과학자 회의에서 발표된 데이터도 예비적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양자 하드웨어 담당 부사장이자 네이처 논문의 공동 저자인 체탄 나약은 "현재의 측정 데이터는 우리가 주장하는 위상 초전도체의 특성이 나타날 확률이 95%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결과를 입증하는 추가 연구 논문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메릴랜드대학의 이론적 응집 물질 물리학자 제이 사우는 "네이처에 실린 논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장하는 위상 초전도체의 발견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며 "과학적 발견이라기보다는 홍보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 인내심이 양자컴퓨팅에서 결실을 맺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0일 보도에서 "인내심은 양자컴퓨팅에서 결실을 맺다"라는 제목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발표를 다루었다. 미켈란젤로가 "천재는 영원한 인내"라고 말했듯이, 마이크로소프트가 그간 양자컴퓨팅에 투자한 인내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세대 기술 담당 부사장 제이슨 잰더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발견은 진공관에서 반도체로 이동하는 것과 같은 세대 간 기술"이라며 "우리는 이것에 대해 매우 흥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양자컴퓨터의 특성을 활용하면 미세 플라스틱 분해, 토양 비옥도 향상, 자가 치유 콘크리트 개발 등 새로운 촉매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0년 말까지 기존 컴퓨터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틸리티 규모의 양자컴퓨터를 구축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 스티븐 사이먼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여러 차질에도 불구하고 위상 큐비트에 대한 믿음을 유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들이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자금 지원을 계속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 지정학적 영향과 경쟁
강력한 양자컴퓨터의 개발은 현재 인터넷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암호화 방법을 해독할 수 있어 막대한 지정학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과 중국 모두 이 기술 개발에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산업적으로 유용한 양자컴퓨터를 기존 예측보다 더 빨리 구축할 수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사이퀀텀(PsiQuantum)을 선택했다.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디지털 암호화 기술을 무력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연구원들은 비트코인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수준의 양자컴퓨터 개발에는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 회의적 시각과 과거 선례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과거 사례가 있다. 미네소타대학의 양자 장치 물리학자 블라드 프리비아그는 "2017년과 2018년 네이처에 발표된 비슷한 주장의 논문들이 나중에 철회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2018년 데이터 불일치를 인정한 후 공동 논문을 철회한 바 있다.
양자 컴퓨팅 회사 리버레인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브라이얼리는 "아직 결정적이지 않다"면서도 "최초의 오류 수정 양자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경쟁에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실용적인 양자컴퓨터 개발까지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지난달 "매우 유용한 양자컴퓨터 개발에 15년이 걸린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초기 단계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는 유용한 양자컴퓨터 개발까지 20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구글은 지난해 12월 자사의 양자 칩 '윌로우'가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10의 24제곱 개월이 걸릴 계산을 5분 만에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구글, IBM, 퀀티넘 등 다른 기업들은 이미 더 많은 큐비트를 운영하며 기본적인 양자컴퓨팅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 저명한 물리학자는 FT에 "실현 가능해 보이지만 5년은 낙관적"이라며 "양자는 컴퓨팅을 위한 특수 목적 애드온의 무기고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의 체탄 나약 부사장은 다음달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미국물리학회 회의에서 추가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