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충수에 빠진 인텔"...오하이오 공장 가동 2030년으로 연기, 칩스법 지원에도 효과 '미미'

반도체 시장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의 공격적인 미국 시장 확장 행보가 인텔의 파운드리 왕좌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0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TSMC는 지난 4일 1000억 달러(약 144조64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반도체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특히 미국 정부의 칩스법 수혜를 받고 있는 인텔의 미래 전망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TSMC는 미국 내에 팹(반도체 제조) 시설 3곳, 패키징 공장 2곳, 그리고 연구개발(R&D) 센터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미 애리조나에 650억 달러(약 94조8350억 원)를 투입해 진행 중인 제조 시설 확장에 더해지는 파격적인 대규모 투자로, 반도체 업계를 들썩이게 했다.
반면 인텔은 최근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자전문 매체 모틀리 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인텔의 총매출액은 531억 달러(약 76조8038억 원)로 전년 대비 2% 감소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감소폭이 크지 않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특히 파운드리 사업 부문 매출은 175억 달러(약 25조3120억 원)로 7%나 급감했으며, 이는 전체 실적 하락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텔은 오하이오 신규 공장 가동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크게 늦춘 2030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올해와 2026년 사이로 예정됐던 공장 설립이 10년이나 늦춰진 것으로, 이는 인텔의 암울한 전망에 더욱 무게를 더했다.
모틀리 풀의 분석에 따르면 "인텔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60%를 장악한 TSMC와 직접 경쟁하는 핵심 사업 부문에서 부진을 겪고 있다"며 "특히 인텔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 둔화세가 회사 전체 사업보다 빠르다는 점은 뼈아픈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압도적인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자랑하는 TSMC를 과연 인텔이 따라잡을 수 있을지 시장의 회의론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 시기인 2022년 반도체 연구 개발 및 제조 분야에 2800억 달러(약 404조 원)를 투자하는 '칩스 및 과학법'을 제정했다. 인텔은 이 법안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혔으나, 현재까지 '칩스법' 보조금의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TSMC의 이번 공격적인 투자가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퀄컴 등 주요 고객사와의 협력 관계를 한층 강화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압도적인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인텔과의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몇 주 사이, '매그니피센트 7'으로 불리는 기술주 중심의 대형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일각에서는 인텔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모틀리 풀의 분석에 따르면, TSMC는 이러한 인텔의 위태로운 입지를 놓치지 않고 발 빠르게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라는 '정면 돌파'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에서는 인텔과 TSMC 간 파트너십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더 나아가 인텔이 TSMC에 인수 합병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다.
모틀리 풀은 "AI 대전환 시대를 맞아 반도체 시장의 판도 변화가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인텔은 방향타를 잃은 채 표류하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TSMC의 이번 과감한 베팅이 '체크메이트'가 되어 인텔의 파운드리 왕좌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신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국내 제조업 투자 강화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인텔이 이번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그리고 TSMC의 공격적인 투자 행보가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