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 자체 AI 개발 및 빅테크 의존 vs 유럽 금융권, 다양한 기술 파트너십 추구

지난 11일(현지시각) 실리콘밸리 전문 매체 '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유럽 주요 은행들은 구글이 투자한 AI 스타트업 안트로픽(Anthropic)과 같은 신생 기업들의 최첨단 인공지능 모델을 실험하는 데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미국 은행들은 자체 AI 개발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 협력에 집중하고 있다입니다.
주요 유럽 금융기관들은 안트로픽의 AI 모델을 자사 기술 인프라에 통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 중이다. 이는 안트로픽의 기술이 아직 미국 은행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채택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안트로픽은 챗GPT(ChatGPT)를 개발한 오픈AI(OpenAI)의 주요 경쟁사로 부상했다.
유럽 은행들이 안트로픽과 같은 외부 AI 모델에 더 개방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유럽은 미국보다 AI 규제에 더 유연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AI법은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위험을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미국은 아직 AI 규제에 대한 명확한 연방 프레임워크가 부재한 상황이다. 이러한 규제 환경의 차이가 유럽 은행들에게 AI 기술 실험에 더 큰 자유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 유럽 은행들은 미국 은행들보다 기술 접근법에서 더 큰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대형 미국 은행들이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같은 소수의 빅테크 기업에 크게 의존하는 반면, 유럽 은행들은 더 넓은 범위의 기술 제공업체들과 협력하는 데 개방적이다. 이러한 분산형 접근법은 유럽 은행들이 특정 기술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혁신적인 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
스페인의 방코 사바델(Banco Sabadell)은 안트로픽과 적극 협력 중인 유럽 은행 중 하나다. 방코 사바델은 최근 안트로픽의 AI 모델을 활용해 고객 서비스와 리스크 관리를 개선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방코 사바델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세사르 곤살레스-부에노(Cesar Gonzalez-Bueno)는 "안트로픽의 기술에 매우 감명받았으며, 우리 은행 운영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를 활용할 큰 잠재력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BNP 파리바(BNP Paribas)도 안트로픽의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BNP 파리바의 한 고위 임원은 "안트로픽은 AI 분야에서 매우 흥미로운 기업이며, 그들의 모델은 기존 모델들보다 더 나은 성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BNP 파리바는 현재 내부적으로 안트로픽의 기술을 평가 중이며, 향후 잠재적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도이체방크(Deutsche Bank)도 이러한 유럽 은행들의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운영 효율성을 개선하고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안트로픽의 기술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고려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리카르도 호네커(Ricardo Honecker)는 "AI는 은행 산업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안트로픽과 같은 혁신적인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이 우리에게 경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유럽 은행들이 안트로픽과 같은 외부 AI 모델을 채택하는 데는 리스크와 과제가 따른다. 금융 데이터 보안 전문가들은 데이터 보안,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편향성 등의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유럽 금융산업 내부에서는 외부 AI 모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은행들의 자체 기술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금융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Accenture)의 금융 기술 부문 책임자인 마르코 비안치(Marco Bianchi)는 "유럽 은행들의 AI 스타트업과의 협력 확대는 기술 혁신 속도를 높이지만, 장기적인 데이터 거버넌스와 기술 주권 문제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안치는 "금융기관들이 AI 도입에서 균형 잡힌 접근법을 찾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러한 유럽 은행들의 움직임은 금융업계에서 AI 기술 도입 접근법의 지역적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기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기술 전략의 문제를 넘어 각 지역의 규제 환경과 기업 문화를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럽 은행들의 개방적인 AI 협력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이는 향후 금융산업의 기술 혁신 방향성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