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5% 관세 시행 앞두고 세계 거래소 재고 증가, 전문가들 "하반기 조정 가능성" 경고

월스트리트에서는 구리를 '닥터 코퍼(Dr. Copper)'라고 부르는데, 이는 구리가 자동차, 건축자재, 휴대폰 등에 사용되어 산업 및 소비자 수요를 반영하므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가진 것처럼 경제 지표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그러나 올해 구리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은 경제 수요 증가보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백악관은 지난달 "구리 수입이 어떻게 미국의 국가 안보와 경제적 안정을 위협하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 구제책이 잠재적으로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의회 합동회의 연설에서 구리와 알루미늄, 철강, 목재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공표했다.
이러한 관세 위협으로 인해 중국, 런던, 미국의 거래소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앞서 재고를 쌓고 있다.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Ned Davis Research)의 애널리스트들은 "세 거래소 모두의 재고는 잠재적인 관세를 앞두고 재고가 쌓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또한 "구리 시장이 이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추가적인 급격한 재고 증가는 우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관세가 공식적으로 발표되면 대응이 잠잠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리 가격 전망에 대해서는 투자은행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의 애널리스트들은 "세계 경제 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는 구리에 대해 중립적인 견해를 유지한다"고 밝히며, 특히 약한 소비자 수요로 인해 중국 경제의 건전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씨티은행(Citibank)의 원자재 전략가들 역시 구리 랠리에 매수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일시적으로 미국 구리 수입 수요 강세"와 공급 제약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가격이 조금 더 상승할 수 있지만, "미국의 수입 수요가 감소하고 미국의 광범위한 관세 시행으로 실물 소비와 심리가 완화됨에 따라" 하반기에 구리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TD 증권의 수석 원자재 전략가인 라이언 맥케이(Ryan McKay)는 이달 초 보고서에서 "구리의 랠리는 여전히 일부 다리가 있을 수 있으며 현재의 거시적 위험 회피 심리로부터 광범위하게 격리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구리 관련 투자에 대해서는 광산주 투자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리는 미국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을 지원하는 전력 공급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AI 붐은 전기 부품 회사인 이튼(Eaton)과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의 주가 상승에도 기여했다.
UBS의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구리의 중기 전망은 전기화와 공급 문제로 인해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서던 코퍼(Southern Copper), 런던에 본사를 둔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프리포트-맥모란(Freeport-McMoRan)과 같은 "고품질 구리 주식"을 추천했다.
특히 프리포트-맥모란은 미국에서 큰 광산을 운영하고 있어 관세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격리될 것으로 분석된다. UBS 애널리스트들은 "구리의 매력적인 중기 펀더멘털을 감안할 때 구리 주식은 다각화된 채굴업체에 프리미엄으로 계속 거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구리 관련 주식들은 금속 자체의 랠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과가 낮았다. 프리포트-맥모란은 올해 2% 상승에 그친 반면, 서던 코퍼는 6% 이상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구리 가격이 결국 냉각되더라도, 광산 주식은 여전히 상승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팩트셋(FactSet)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3월까지 구리와 금의 선물 계약 가격 변동률을 비교한 결과, 구리는 금보다 더 큰 변동성을 보이며 전반적으로 더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1월 초에는 두 자산 모두 변동률이 낮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승세가 가속화되었다. 특히 구리는 3월 중순에 급격한 상승세를 보여 금과의 격차를 벌렸으며, 약 20%의 상승률로 최고치를 달성했다. 반면 금은 약 10%의 상승률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최고치에 도달했다.
이러한 추세는 투자자들에게 산업용 금속(구리)과 귀금속(금)의 서로 다른 역할을 시사한다. 구리는 경제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는 자산이지만, 금은 경제적 불확실성이나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을 때 안정성과 위험 회피를 위한 자산으로 기능한다는 분석이 월가에서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