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SWIFT 연결 복원 등 요구... 유럽 동맹국과 미국 간 갈등 조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5일(현지 시각) 미국이 크렘린궁의 흑해 휴전 요구 조건으로 러시아 농산물 수출 증대와 금융결제 시스템 접근 회복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국이 참여한 이틀간의 회담 결과로 나온 결정이다.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이 유지하겠다고 천명한 일부 은행 제재가 해제될 경우에만 흑해 휴전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러시아는 식량 및 비료 거래에 관여하는 주요 은행들이 세계은행간금융통신협회(SWIFT)에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구체적으로 러시아 농업 관련 기업을 다루는 국영 은행 로셀호스방크(Rosselkhozbank)를 지목했다.
서방의 제재는 국제법상 대부분 금지되어 있고 식량 가격 상승과 전 세계 기아 증가 우려 때문에 러시아의 곡물이나 농산물 수출을 직접 겨냥한 적은 없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국의 농산물 수출이 유럽 항구와 은행 제재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컬럼비아대학의 선임 연구원이자 전 미국 고위 제재 관료인 에드워드 피시먼은 "푸틴의 최종 목표는 분명하다. 그는 트럼프를 설득해 러시아 은행과 에너지 기업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 크렘린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화를 끌어낼 수 있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의 성명은 미국의 성명보다 제재 완화에 대해 훨씬 더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EU)의 제재 정책을 관리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WSJ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EU의 한 고위 관리는 유럽인들이 러시아 경제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벨기에에 본사를 둔 SWIFT에 러시아 은행들을 복귀시키려면 EU 국가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 우크라이나, 러시아 의도에 의구심…"합의 조작 시도 이미 진행 중"
이번 합의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실질적 혜택은 불분명하다. 우크라이나의 미사일과 해상 드론 공격으로 러시아 해군은 이미 흑해의 많은 지역에서 철수했으며,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은 증가세를 보였다. 키이우의 국방부 장관은 회담 타결 직후 "러시아 전함이 동부 흑해를 떠날 경우에도 우크라이나는 자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합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흑해 항구 기반시설에 대한 미사일·드론 공격 축소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실제로 러시아는 회담 직전 흑해 항구 도시 오데사에 전쟁 중 최대 규모의 드론 공격을 감행해 최소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는 러시아가 협상 전에 자신들의 공격 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러시아의 결과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며 "그들은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어 있고, 세계와 트럼프, 미국에 거짓말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협상의 일환으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약화시키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 안드리 시비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를 통해 "불행히도 우리는 이미 러시아가 제재 완화에 관한 합의를 조작하고 조건화하려는 시도를 볼 수 있다"며 "모스크바는 모든 조작이나 합의 위반에 대해 적절한 결과에 직면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백악관은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을 위한 이전 합의의 이행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러시아로 강제 이주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귀환을 모색하겠다는 미국의 약속도 재확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과거에 서방이 화물선 보험 가입 장애와 SWIFT의 로셀호스방크 제재 등으로 러시아 곡물 수출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하지 못해 러시아가 속았다고 불평한 바 있다.
지난 2년간 러시아의 농산물과 비료 수출은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유럽에서도 러시아의 비료 수출이 점차 큰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EU는 매년 러시아로부터 수십억 유로의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2023년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합의를 일방적으로 철회한 바 있다. 당시 크렘린은 서방이 러시아 식량 및 비료 수출 촉진을 위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 국영TV 인터뷰에서 "우리는 곡물과 비료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원한다. 어느 누구도 러시아를 이 시장에서 배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